뮌헨, 여름

   모든 것들이 살아나거나 돌아오는 밤도 있는 법이었다. 주안은 조심스럽게 잔을 내려놓았다. 선잠에 막 빠져들기 시작한 것처럼 보이는 수한을 놀라게 하고 싶지 않았다. 무릎에 덮었던 담요를 치워도 춥지 않을 만한 날이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풀냄새와 함께 습기가 한 줌씩 밀려들어왔다. 묵직한 여름공기가 피부를 단단히 감아오는 것을 주안은 싫어하지 않았다. 스스로의 힘 아닌 다른 것이 사방에 가득 들어차 있는 느낌은 생소하고도 다정했다. 예고 없이 온몸에 힘을 빼고 뒤로 풀썩 쓰러져도 누군가 받쳐줄 것처럼 안심이 되었다. 앞으로 아무렇게나 팔을 뻗고 손바닥을 펼치면 분명하지 않은 무언가가 손을 잡아주었다. 아, 하고 뜻 없이 내뱉는 소리도 목적지가 있는 말처럼 길게 울리는 게 좋았다. 반대로 수한은 계절이 바뀌면서 습도가 조금만 올라가도 옷장 속에서 시체를 발견한 사람처럼 질겁했다. 셋이 함께 살던 동안, 이국과 조국을 규칙 없이 번갈아 저주하는 수한의 버릇은 여름이면 몇 배로 심해지고, 수십 년에 걸친 아버지의 푸념을 베갯잇 속 진드기처럼 여기는 은영의 히스테리도 발맞춰 증폭되곤 했다.
   “지옥이다, 불지옥이 따로 없어.”
   그것은 대개는 빨리 죽어버려야지 운운하는 노인들의 습관적인 추임새처럼 심상하게 들렸다. 그러나 40년 만의 불볕더위가 20일간 지속되고 있습니다, 라는 뉴스앵커의 멘트가 거실 티브이의 브라운관 위에 끈적끈적하게 흘러내리던 어느 날, 욕실 세면대를 두 손으로 움켜쥐고 거울 속을 노려보며 수한이 그 말을 내뱉었을 때 부엌으로 향하던 여섯 살의 주안은 그 자리에 얼어붙어버렸다. 그 순간 수한의 눈에서 읽어낸 것을 주안은 오래도록 잊지 못했다. 욕실 문은 열려 있었고, 세수라기보다는 욕설에 가까울 정도로 사납게 끼얹은 물은 늙은 수한의 얼굴에서 감청색 세면대를 향해 천천히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수한의 치아 사이로 반쯤 으깨어져 나온 음절들도 비슷한 속도로 하강했다. 색과 온도가 충분히 강렬해지기만 한다면 단어들을 눈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을 주안은 그때 처음 알았다. 주안은 외할아버지가 공간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것은 숱하게 들었지만 사람을 욕하는 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 거울에 비친 수한의 표정은 누군가를 증오하다 못해 살기를 느끼는 사람의 표정과 같았다. 그리고 그 증오가 곧 스러질 충동이나 위악이 아니라 밑바닥에서부터 길어 올린 진심이라는 것을 어린 마음에도 단박에 읽어낼 수 있었다. 그렇게 수한은 주안에게 진심을 알아보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다만, 수한이 심연에 빗대어지는 모든 것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잘 아는 주안은 그의 단어들이 지나온 깊숙한 터널을 목격했음을 그 날에도, 그 후로도 수한에게 말하지 않았다.

   수한은 습기 외에도 많은 것을 견디지 못했다. 어둠도 그 중 하나였다.
   “불을 좀 켜라, 불을 켜!”
   평소에는 지극히 간결하고 효율적으로 사는 인간형이었으나 그런 말을 할 때면 수한은 꼭 한 번만 말하고 그치는 법이 없었다. 죽은 사람을 살려내려고 절박하게 주문을 외우는 마녀처럼 끝없이 중얼거리다보면 단어들 중 절반 이상은 그의 입천장을 동굴삼아 그 안에 몸을 웅크려버렸다. 은영은 대개의 경우 수한을 측은히 여기기보다는 짜증을 냈다. 주안은 외할아버지가 불안 증세에 휩싸이거나 엄마가 언성을 높이기 전에 얼른 나서서 집안의 불을 모조리 켜야 했다. 간혹 어두운 골목을 지나 집으로 돌아와야 할 때에는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려 하면서도 도무지 숨길 수 없을 만큼 겁을 내는 외할아버지의 손을 어린 주안이 꼭 붙들어 주어야 했다. 수한을 보호해야한다는 책임감이 막연하지만 진지하게 일렁일 때면 주안은 자신의 연한 마음이 마치 주먹을 꼭 쥘 때처럼 좀 더 튼튼해지는 것을 느꼈다.
   “할아버지, 걱정 말아요. 주안이가 손 잡고 있어.”
   “으응, 할아버지 걱정 안 한다, 그냥 눈이 침침해서 천천히 걷는 거야.”
   늘 그런 대화가 반복되다가, 주안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자 수한의 대답은 끄트머리가 바뀌었다.
   “으응, 할아버지 걱정 안 한다, 우리 똑똑한 손녀딸이 할아버지 지켜주잖아.”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주안은 자신이 이제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어른이 된 기분은 주안을 흥분되고 우쭐하게도 했지만, 어쩐지 심장 옆쪽이 먹먹해지게도 했다. 주안은 긴 계단의 첫 칸을 밟으며 일부러 숨을 크게 쉬어 보았다. 책임감도, 거기서 오는 중압감도, 사람들에게는 각자 쉽게 견딜 수 없는 대상이 있고 그게 무엇인가는 천차만별이라는 사실도,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야겠다고 마음먹어서 생기는 중압감은 사람을 강하게, 그리고 어쩌면 오히려 더 행복하게 만든다는 것도, 모두 수한이 가르쳐주었다.

   주안은 밀어내었던 담요를 펼쳐 수한이 덮고 있는 담요 위에 겹쳐 얹었다. 그러고는 가만히 수한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마흔 살쯤 되면 그간의 경험이 남긴 흔적들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 지난 삶에 대해 거짓말을 할 수 없게 된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그보다 두 배가량 되는 시간을 살아낸 수한의 얼굴은 거짓말은커녕 변명이 될 만한 어떤 설명을 덧붙이기도 전에 앞질러 모든 것을 말해버릴 터였다. 주안이 눈감고도 떠올릴 수 있는 수한의 평소 표정은 잠이 오지 않는 새벽에 대충 그려놓고 ‘불운한 자’라고 제목을 붙인 조악한 스케치 같았다. 다만 가끔 수한이 독일에 대해 이야기 할 때면 그 단색의 스케치 위로 눈빛만이 투명하게 빛나며 살아 움직였다.
   주안은 수한의 얼굴을 활보하는 선들을 하나하나 눈으로 좇았다. 그 중 어떤 선이 공포를 뜻하고 어떤 선이 환희를 뜻할지 궁금했다. 모든 선들이 모여 그린 전체의 그림은 어떤 분위기인지 한걸음 떨어져 감상해보기도 했다. 이윽고 수한의 눈가를 맴도는 모기 한 마리를 손을 휘저어 쫓았다. 찰나를 그린, 간결하고 선이 거친 그림. 잠들어 있는 얼굴도 다르지 않았다. 다만 깨어있을 때의 표정과 제목만은 좀 다르게 붙여야 할 것 같았다. 잠든 수한의 얼굴에 보다 어울리는 제목은 ‘외로운 자’였다.
   주안은 수한이 어쩌다 그렇게 적나라하게 외로운 노년의 얼굴을 갖게 되었는지 헤아려보았다. 외할머니는 마흔아홉 살에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입술이 바싹 마른 사람들이 환승할 열차를 잡아타려는 승객들처럼 부산스럽고 절박하게 돌아다니는 대학병원에서 진단을 받은 지 고작 두 달 후였다. 수한은 죽은 아내에 대한 얘기를 자주 하지는 않았지만, 어쩌다 입에 올리게 되는 때에는 꼭 당차다거나, 강단 있다거나 하는 수식어를 빼먹지 않았다. 요즘 세상에 태어났다면 간호사가 아니라 의사를 했을 여자다, 라고. 그리고 그런 말이 빠지지 않고 나오는 건 새해 첫날 아침밥상에서였다.
   “그럴 수가 있느냔 말이다, 그렇게 단단한 인간이 하루아침에.”
   작년에도 그는 첫술을 뜨다말고 숟가락에 꼭 맞는 크기의 가래떡을 이물스럽다는 듯이 바라보며 말했었다. 그 단단한 인간, 강한 여인, 심지가 굳은 사람과 동갑이었던 수한은 반백의 나이를 먹게 된 바로 그 새해 아침에도 밥상을 차려놓고, 누군가를 증오하는 표정을 띤 채 지옥이 따로 없구나, 라며 혼잣말을 했을 거라고 주안은 짐작했다.
   그들 부부 사이에 자식은 은영 하나뿐이었는데, 주안이 기억하는 한 은영은 부모에게 살가운 사람이 아니었다. 수한은 기회만 있다 하면 듣는 사람이 지칠 만큼 집요하게 독일타령을 해대곤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독일, 이라는 두 음절을 혀끝에서 굴려보고 입술에 대어보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병이라도 앓고 있는 것처럼 끝을 모르는 반복이었다. 한편 은영은 독일이라는 말의 울림을 듣는 것을 유달리 견디지 못했으니, 그들이 한 지붕 아래 사는 동안 그 집에는 매일 견딜 수 없는 상태에 놓인 사람이 적어도 하나는 있었던 셈이다. 주안으로 말할 것 같으면 조국의 이름보다 더 자주 들으며 자랐지만 정작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나라의 이름에 대해 별다른 동경이나 유감은 없었다. 다만 워낙 자주 듣다보니 언제부턴가 우연히 그 이름을 들을 때면 반사적으로 어떤 기분이 딸려오기는 했다. 그것은 썩 유쾌하지 못한, 갈비뼈가 시리고 뒷목이 허전해지는 느낌이었는데, 딱히 뭐라 부르기가 애매했으나 그나마 가까운 것을 찾자면 외로움인 것 같았다. 그것은 독일에 대한 수한의 모순적인 태도 양쪽에 유일하게 공통된 감정이기도 했다. 수한은 시기와 과욕이 판을 치는 조국을 맹비난하며 근면하고 검소한 국민들이 질서정연하게 일구어가는 모범의 나라 독일을 그리워했으나, 돌아서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목에 핏대를 세우며 분노하기도 했다.
   “그놈의 나라가 나를 영영 실패자로 만들었어.”
   그것은 주안이 처음 대면한 극적인 모순, 한 인간 안의 비일관성이 얼마나 병적으로 보이는지에 대한 최초의 체험이었다.
   “남의 돈을 훔쳐서 입에 풀칠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 빌어먹을 막장에는 들어가지 말았어야 했다. 그 다음에 팔자를 고쳐보겠답시고 대학에 기어들어가지 말았어야 했어. 목숨 내놓고 땅 파봤으면 곱게 돌아올 일이지 쓸데없는 과욕을 부려가지고서는.”
   문장과 문장 사이에 빈틈 하나 두지 않고 그런 말들을 쏟아낼 때, 수한은 국영방송의 다큐멘터리에 등장할 법한 파란만장한 역사의 목격자라기보다는 자신을 버린 연인을 마음껏 저주하지도 그리워하지도 못하는 스무 살 남짓의 문청처럼 보였다.
   수한의 기억 속에서 독일은 선선한 바람이 불고 깨질 듯이 맑은 하늘을 가진 천상의 나라인 동시에, 천 미터 아래에 기온이 45도까지 올라가는 저승을 품고 있는 가혹한 땅이었다. 같은 곳에서 온 비슷한 모습의 사람들과 함께 목숨을 내놓고 일하는 어둑한 땅 밑과 낯선 언어를 더듬더듬 말하며 걸어가는 정갈한 지상에서 한결 같은 것은 선뜩한 외로움뿐이었다. 은영은 수한이 어둠을 무서워하는 이유를 주안에게 설명해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주안은 수한을 압도하는 어둠이 집 앞 골목이나 새벽거실의 것이 아니라 수한의 뒤를 쫓아올 수도 없는 아주 먼 나라의 땅 밑 어디쯤의 것임을 처음부터 알았다. 하이네 시집을 베껴 적으며 소일하는 문학도의 외로움이나, 정신적 외상이 남을 정도로 비인간적인 상황에 내몰려본 생활인의 외로움이나 다 우주처럼 광막한 외로움이었다. 기울이기에 따라서 수백 가지 색깔로 달리 빛나는 그런 종류의 외로움을 주안은 물려받았다.
   “할아버지, 감기 걸리면 안 되니까 우리 들어갈까?”
   주안은 담요 위로 수한의 손등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 하지만 목소리는 마치 일부러 최대한 낮춘 것처럼 들릴 듯 말 듯 했다. 기억이며 자의식을 너저분하게 잃어가는 병은 가끔 공포도 잊게 해주어서, 수한은 이제 사이가 없는 문장들을 쏟아낼 수 없는 대신 희미한 불빛뿐인 여름밤의 발코니에 앉아 풀벌레 소리를 듣다가 잠이 들 수 있게 되었다. 주안은 그런 기이한, 한편으로 귀한 평온을 방해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강원도에 집을 얻자는 건 은영의 생각이었다. 수한은 자꾸 실패라고만 불렀지만 어쨌거나 독일 땅을 좀 밟아본 경험은 그가 학위를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뒤 자그마한 무역회사를 차리고, 어중간히 수입을 올리는 데에 소박한 열쇠 역할 정도는 해주었다. 그리고 스물일곱 이래 기적적으로 오랜 기간 독문과 시간강사로 일하며 악착 같이 돈을 모은 데다 이혼 위자료 명목으로 받은 돈도 고스란히 쌓아둔 은영도 약간의 변덕을 부릴 정도의 경제력은 있었다. 주안이 유학을 떠나면 곧 죽을 노인과 중년의 이혼녀 둘이서 번잡한 서울에 붙어있을 이유도 없고, 서울 집 전세금만 가지고도 전원주택은 못 되더라도 어디 폐가 같이 생긴 거라도 한 채 못 사겠느냐고 은영은 말했다. 그때만 해도 정신이 멀쩡한 것은 물론 규모는 작아졌지만 무역일도 간간히 계속하고 있던 수한은 이 좁아터진 나라에 발이 묶여 사는 것도 답답해 죽겠는데 그나마도 시골구석에 처박히자는 말이냐고 반대했으나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거리를 오가는 것을 더는 견디지 못하겠으니 정 그러면 혼자서라도 가버리겠다고 하는 은영을 이기지 못했다.
   사실 수한이 정말로 원하는 것은 강원도에서의 전원생활보다는 주안을 핑계 삼아 독일에 다시 한번 가보는 것이었다. 실제로 주안이 주한독일대사관에 비자신청을 하러 갈 때 이유 없이 따라나선 수한은 주안보다 몇 배는 더 들떠보였다. 대사관은 옛 서울역을 마주보는 자리에 다소 휘황하게 서있는, 문이 크고 복도가 긴 대형빌딩의 두 층을 빌려 쓰고 있었다. 신분증을 맡기고 방문증을 받은 후 엘리베이터를 타고 대사관이 있는 9층에서 내리자 바닥에 깔린 카펫과 벽 너머로 들리는 타국의 언어가 주안을 조금 경직되게 했다. 창틀이며 문손잡이며 할 것 없이 사방의 마감재들이 모두 짙은 은회색이었는데, 그것은 어쩐지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독일의 이미지에 대한 은유 같았다. 과묵하고, 실용적이며, 빈틈없는 색. 수한이 입구에 붙은 안내문을 살펴보는 동안 주안은 그 색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것은 금속성이지만 아주 차갑거나 번득이지는 않았고, 그저 묵직하고 은은하게 빛났다.
   평일 오전인데도 사람이 많아 그들은 한 시간 가량을 좁은 방에서 기다려야 했다. 마침내 주안이 창구에 다가가 여권과 입학허가서 들을 내밀었을 때, 수한은 흥분한 표정으로, 통역이라도 할 것처럼 가까이 다가섰다. 직원은 한국인이었고 수한이 도울 일은 없었지만 그는 전문성을 가진 조력자로서 함께 와있다는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그가 흰 점들로 된 선이 격자무늬를 그리는 감색 손수건을 꺼내 이마의 땀을 훔칠 때, 주안은 가방 속으로부터 반쯤 딸려 나온 그의 여권을 못 본 척해야 했다.
   기다린 시간은 길었으나 서류를 제출하는 것은 오 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주안이 여권과 접수확인증을 가방에 챙겨 넣은 뒤 자리에서 일어나자, 수한은 그 자리를 떠나기가 아쉬운 듯 떨리는 손으로 모서리를 최대한 맞춰 아주 천천히 손수건을 접었다. 그러고는 당케 쉔, 말끝을 길게 끌며 한국인 직원에게 독일어로 인사했다. 한때는 익숙했던 그 간단한 한 마디를 오랜만에 발음해보기 위해 간밤에 잠을 설쳤으며 아침에는 거울 앞에서 소리 없이 입모양으로만 두어 번 말해보았으리라는 것이 역력히 느껴지는, 느리게 지는 해 같은 소리가 났다.
   주안은 수한이 여행 삼아서라도 따라나서겠다고 하면 말리지 않을 작정이었다. 은영은 사람을 끊임없이 밀어내면서도 또 막상 혼자 남겨지면 지독히 외로움을 타며 자기 자신을 어쩌지 못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오래 혼자 둘 수 없는 노릇이었지만 잠깐이라도 뮌헨의 가을을 관통하는 회색하늘을 다시 보는 것은 수한에게 더없이 의미 있는 일일 터였다. 주안은 노인이 장시간의 비행을 견딜 수 있을 만한 건강상태에 있는지 고민했고, 몰래 비행기표를 끊어 숨겨두었다가 적당한 기념일에 느닷없이 들이미는 장면도 상상해보았다. 그러나 그런 상상들 중 어느 것도 현실이 되지 못했다. 주안의 출국을 두 달 앞두고 은영이 이른 아침 교회 앞에서 트럭에 치여 즉사했기 때문이었다.

   수한은 트럭 운전사도 피해자라고 말했다. 하루에 네 시간도 못 자고 내리 몇 주를 냉동식품을 싣고 도시에서 도시로 달려 다녔다고. 그러다 동도 트지 않은 시각에 자살하러 뛰쳐나온 여자를 치고 말았으니, 그 마음이 어떻겠니. 수한은 말했다.
   “계약 끝나고 태반은 고국에 돌아가는데 몇몇은 독일 대학은 학비가 공짜라는 말에 바람이 들었는지 대학을 다니겠답시고 거기에 남았어. 사정 모르는 치들이야 파독광부를 목숨 담보로 돈 버는 일밖에는 못하는 막노동자로 여기겠지만 고등학교까지 나온 사람도 숱하게 많았고 다들 시험 봐서 뽑혀온 인재였으니까, 기중에는 공부욕심 많은데 돈 버느라 기회가 없었던 게 한인 사람도 꽤 있었지. 이왕 구라파에 온 거, 굴이나 파다가 그냥 손 털고 갈 수는 없다, 이게 바로 인생을 바꿀 기회다 하고 악착같이,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학사 석사가 되어가지고 돌아간다 결심하고 죽어라 열심히 살았는데. 그런데 아무리 해도 빛이 안 드는 거야, 땅 속에서나 땅 위에서나. 생계를 유지한다는 게 대낮에도 눈이 절로 감기게 힘든 일이라는 걸 잘 아는데 어떻게 원망하겠나. 다 피해자지. 은영이를 저래 만든 데 누군가 책임이 있다면 그건 나다. 가뜩이나 발육도 느린 어린애가 집구석은 찢어지게 가난하고, 밖에 나가서는 파란 눈의 덩치 큰 애들한테 치이고 하는데 제대로 신경도 못 써줬으니, 말문을 닫아버릴 만도 하지. 그 애는 뼛속까지 외로운 인간으로 컸고, 결국엔 평생 그걸 못 견디다가 도망친 거야.”
   수한이 너무나 침착한 어조로 은영의 죽음을 자살이라 단정하는 바람에 주안도 처음에는 그 말을 믿을 뻔 했다. 수한이 독일에서의 유학 아닌 듯한 유학을 중도 포기한 결정적인 이유가 은영의 실어증 때문이었다는 것도 그전까지 들어왔던 이야기와 일치했다. 하지만 지금껏 그것에 대해 수한이 죄책감을 드러낸 적은 많지 않았다. 서울에 자리 잡고 육 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은영은 다시 아무 문제없이 언어를 되찾았다고 했다. 심지어는 모국어뿐 아니라 독일어까지도 은영에게 돌아왔고, 독일을 싫어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독문학을 전공하고 서울에서 석사를 마치자마자 독문과 강사가 되어버렸으니, 겉으로 보기에 유년기에 일시적으로 말을 잃었던 것이 은영에게서 영영 앗아간 것은 없는 듯 보였다.
   주안은 수한의 말 중에서 외로운 인간 운운하는 대목을 곱씹었다. 그러고 보면 은영이 이혼을 결정했을 때도 수한은 은영에게 비슷한 말을 했었다. 네가 외로운 인간이 되어놔서 그렇다, 지금까지 함께 산 것도 너나 강 서방이나 애 많이 썼다, 라고. 주안은 수한의 논리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외롭기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빈자리가 지나치게 많은 마음으로부터 사람이나 생존 따위를 도려내버리려고 한단 말인가. 주안의 경우에는 그 빈 공간들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무엇도 덜어낼 수 없었다. 사소한 관계 하나하나에 연연했고 모든 시간을 의무들로 팽팽히 채워 언제나 바쁘게 움직였으며, 허공을 채워주는 것들, 이를테면 장마, 도로변의 소음, 심지어는 중국발 미세먼지 같은 것들도 좋아했다. 외롭다면 당연히 주변을 무엇으로든 채우려 애쓰기 마련이라는 게 주안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은영 또한 반드시 그랬으리라 단정할 마음은 없었다. 권장되는 사회적 공감, 스스로를 타인의 입장에 놓고 생각해보라는 압박에는 크나큰 오류가 있었다. 많은 경우에, 각자의 대전제는 서로 너무도 달랐다. 죽음을 해방으로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신의 존재를 농담으로 여기는 사람이 있고, 치명적인 진실이 적힌 쪽지를 한시 빨리 펼쳐보지 않고서는 못 견디는 사람이 있는 반면 확인하지 않고 결연히 태워버리는 편이 더 마음편한 사람도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빈 곳을 더욱 비우는 것만이 공백을 견디는 방법일 수도 있었다.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흔하게 권유되는 ‘그 순간 내가 그였다면’이라는 지극히 도덕적인 가정을, ‘그 순간 그가 그였다면’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주안은 최선을 다해 은영의 사고를 복원해보려 했다. 은영의 입장에서 은영으로서 생각해보려는 노력은 쉽지만은 않았다. 주안이 좀 더 유약한 유형이라면 은영은 하지 못한 말들이 갈비뼈 사이에서 이중의 빗장을 이루고 있는, 언제나 이를 악물고 순간들을 버티는 유형의 사람이었다. 주안이 기분 좋게 넘기거나 아예 주목하지도 않을 것들도 은영을 괴롭히기에 충분했다. 그런 차이 탓에, 은영에게 일어났던 사건들에 대해 안다고 해도 그것들이 은영에게 미친 영향을 정확히 아는 것은 불가능했다. 정말로 이해해보고 싶다면, 얼굴을 맞대고 지냈던 구체적인 뼈와 살의 인간에 대해 억측하기보다는 차라리 허구의 인물을 상상하듯 눈을 감고 상대의 특성들을 가능한 한 추상화한 뒤 한껏 감상적으로 지어낸 서사를 따라가는 편이 더 적절할지도 몰랐다.
   묵과할 수 없는 일들이 잔뜩 쌓인 역사를 가진, 겨울이면 해가 지나치리만치 일찍 지는 타인들의 나라에서 국적이며 인종, 혹은 단순히 자신에 대한 이해를 하기도 전에 이미 태어나서 자라고, 걷고, 두 가지 말을 동시에 배우며, 세상과의 첫 대면에서부터 유난한 시선과 빈번한 냉대를 꾸준히 겪으며 유년기를 보낸 소녀가, 자라서 그곳의 언어를 전공으로 택하는 마음이며, 갱도에서 일하던 날들의 공포 때문에 불안장애를 겪으면서도 여전히 독일을 그리워하는 아버지에 대해 넌더리를 내는 마음, 혹은 자기 때문에 그의 꿈이 좌절되었다는 것에 기인한, 책임도 없는 일에 대한 부채감, 그런 아버지를 대신하여 좀 더 단순하고 실리적인 사람이었던 남자를 그저 결혼하기에 적당한 정도로 사랑한 마음, 그리고 유행을 따르듯 매끄럽고 별로 번잡할 것도 없게 늦은 이혼을 결심한 마음, 하필 그 나라로 유학을 간다는 딸을 지켜보는 마음, 그리고, 응급실에서 사경을 헤맬 때 은영이 마지막으로 뱉은 말, 사람들이 자꾸 쳐다 봐. 그럼에도 여전히 자살은 맥락에 들어맞지 않는 추측이었다. 유서도, 자살을 짐작하게 할 다른 어떤 흔적도 없었고, 은영은 눈이 퍼붓는 날에도 태풍주의보가 발령된 날에도 새벽기도를 빼먹지 않는 사람이었으니 새벽길바닥에 나가 있었던 것도 새삼스러울 것이 없었으며, 경찰에서도 졸음운전에 의한 사고로 결론을 냈다. 경찰이 묘사한 사고의 경위는 망연해질 만큼 단순했다. 나지막한 교회 첨탑이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는 초록불의 횡단보도로 트럭이 곧게 돌진해왔다니, 거기에 보행자가 일부러 뛰어들었을 여지 같은 것은 없었다. 사고보험금까지 받아들고서야 주안은 수한의 확신에 대해 찬찬히 생각해볼 수 있었다.
   “은영이가 나 때문에 죽었다. 그런데 여기는 왜 이렇게 어두운 게냐.”
   한동안 수한은 모든 말을 은영의 죽음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했다. 회사에서 송장을 엉뚱한 수신인에게로 보내거나 대금지급기일을 잊어버린다는 것보다도 그 변함없는 서곡이 수한의 병을 더 분명하게 드러내었다. 여기는 왜 이렇게 어두워, 수한이 같은 말을 반복하며 강원도 집에 새로 단 레이스 커튼을 옆으로 젖혀 걷는 대신 아래로 당겨 뜯어버린 것을 끝으로 주안은 더 이상 모른 척 할 수가 없었다. 바깥은 모든 수치며 회한의 결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올 정도로 햇살이 유난한 대낮이었다. 꾸준히 다닐 병원을 정하고 이따금 간병을 도와줄 믿을 만한 사람을 구하고 수한의 사업을 정리하는 일들은 꽤나 무겁고 복잡하면서도 의외로 시간이 아주 많이 걸리지는 않았다. 한 사람이 자신을 더 이상 책임질 수 없게 되었을 때 그의 흔적이며 생활을 갈무리하는 일이 이렇게 단순한 작업이어도 되는 걸까, 주안은 그 모든 일들을 혼자 감당하는 것이 부담스럽고 불안했으나 그 감정들이 응당 그래야 하는 무게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느꼈다.
   수한의 말과 행동들은 결코 아주 거칠거나 황당한 영역으로는 넘어가지 않았다. 커튼을 뜯어버렸을 때에도 그의 몸짓은 어떤 광기도 띠고 있지 않았다. 천천히, 좌우가 아닌 상하의 움직임만이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것인 양, 원망이 배제된 옅은 농도의 동작이었다. 주안은 그가 정신을 놓게 되는 질병 앞에서마저 죽을힘을 다해 품위를 지키고 있다고 생각했다. 수한이 뜯어낸 커튼은 찢어진 면사포나 물거품이 된 인어의 순정처럼, 버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깨끗하고도 다소 비장한 무언가를 표상하기를 멈추지 않은 채 바닥에 가만히 쌓여 있었다. 주안은 아무 것도 걸려있지 않아 실제보다 더 거대하게 느껴지는 창으로 쏟아지는 햇빛을 정면으로 쳐다보았다. 너무 밝아서 주안의 시야는 빛조각의 잔상들로 금세 어두워지고 말았다. 문득 노인의 백내장 따위가 걱정되어 주안은 창을 등지고 수한의 앞을 막아섰다. 주안의 작은 몸만으로도 수한을 덮을 그림자를 만들기에 충분했다. 얼굴과 목 언저리를 따갑게 하던 빛이 사라지자 수한은 도리어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은영이가 죽었구나. 너무 어두워서.”
   수한의 목소리는 깊고 뜨겁고 어두운 곳에서 멀찍이 울리는 듯 했다. 그날 오후가 다 지나도록 그림자가 닿지 못하는 방 안 구석구석까지 빛이 들다가 이윽고 푸르게 사위었다. 이제 진짜로 어두워졌는데 무섭지 않느냐고 주안이 물었을 때 수한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아주 먼 곳으로 가고 싶구나.”

   정말, 가고 싶구나. 수한이 잠결에 중얼거렸다. 여기가 아닌 어딘가, 그 말은 너무 많은 사람들이 반복해서 이미 특별한 울림을 잃은 낡은 외침이었다. 그 모든 두려움들을 고통스럽도록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으면서도 최초의 한때 무언가 더 낫고 더 높은 것을 생각하게 했던,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어떤 공간에 대해 기어이 갖는 본능적인 그리움을 주안은 막연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두려움마저 더는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쇠약해졌을 때에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것 역시 바로 그 처음의 환상이라는 점에는 조금 압도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시계를 보려고 고개를 돌리던 주안은 서쪽의 길 끝에서부터 가까워오는 헤드라이트 불빛이 나뭇가지 사이로 명멸하는 것을 보았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옆집 남자의 트럭이 자갈 깔린 길 위를 지나며 내는 소음이 한밤의 짙은 빛깔을 흩뜨렸다. 갑작스런 소음에 수한이 몸을 뒤척였고, 가느다란 신음소리를 내는가 싶더니 눈을 떴다. 그는 약간 불안한 기색을 띠고 한 손으로 담요를 움켜쥐었다. 주안이 얼른 의자를 좀 더 가까이로 당겨 앉으며 물었다.
   “할아버지, 괜찮아요? 안 무서워? 우리 이제 들어가요, 집 안은 환해.”
   수한은 자기가 어디에서 깨어났는지 모르겠다는 듯 천천히 주변을 관찰했다. 그의 시선이 여름밤의 형체들을 차례로 훑고 주안이 간이테이블 위에 내려놓은 찻잔에 이르렀다. 잔에는 주안이 다니려 했던 독일 대학의 문장이 커다랗게 그려져 있었다. 바바리아의 공작과 바이에른의 왕을 따라 지어진 긴 이름이 동그란 문장의 둘레를 감돌며 창백하게 빛났다. 문장의 가운데에는 왕관을 쓴 여인이 표정을 알 수 없는 아이를 안고 있었다. 그것은 도저히 피에타로 보이지 않았지만, 누군가에게는 모든 방식으로 피에타였다. 잠에서 막 깬 데다, 아무리 여름이라지만 밤공기 속에 오래 나앉아 있던 탓에 잔뜩 잠긴 목소리로 수한이 말했다.
   “무서워서 숨을 쉴 수가 없었던 적이 평생 딱 두 번 있었지.”
   뜻밖의 길고 명료한 대답에 주안은 자기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수한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의 의자 앞에 웅크리고 앉아 그와 눈을 맞췄다. 아, 눈동자가 왠지 또렷한 느낌이다, 할아버지가 돌아왔다, 하고 생각하며, 주안은 금세 춤추는 마음이 되었다.
   “언제? 그게 언제였는데요?”
   수한은 지체 없이 대답했다.
   “막장에 들어가 있었는데 바깥 쪽 갱도가 무너져서 세 시간 동안 갇혀있었을 때, 그리고 은영이가 말을 안 하던 때.”
   주안이 문득 울컥하는 것을 참느라 숨을 고르는 사이 수한이 느리게 눈을 감았다 뜨며 말을 이었다.
   “돌도 되기 전에 말을 곧잘 할 정도로 똘똘한 애였거든. 서너 살이 되어서는 토끼와 거북이가 나오는 것부터 시작해서 자주 이야기를 지어서 들려주는데, 어디서 이렇게 반짝반짝한 애가 나타났을까, 믿을 수가 없었어.” 옆집 남자의 트럭이 제자리를 찾아 멈춰서더니 이윽고 차문이 여닫히는 소리, 그가 노래를 흥얼거리며 집으로 들어가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그 뒤로는 다시 음악도 빛도 잦아들고 계절에 딸려오는 풀벌레 소리만이 배경처럼 섞인 고요만 남았다. 수한도 입을 열 때만큼이나 갑작스럽게 말을 뚝 그쳤다. 조금만 더 숨을 죽이면 드문드문한 별들이 각자의 나이에 따라 차갑거나 혹은 뜨겁게 전율하는 소리나, 낮은 지붕 위에서 만난 바람들이 서로 휘감듯 서툴게 손을 잡아보고 이내 헤어지는 소리도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주안은 불현듯 아주 먼 곳에 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
   “할아버지, 여기가 어디예요?”
   개었다 흐렸다 하는 수한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 주안이 늘 묻는 질문이었다. 대답을 듣기가 약간은 두려웠던 주안은 마음을 담대하게 먹어보려고 두 손을 모아 쥔 채 가능한 한 멀리로 시선을 던졌다. 그 끝에서 우기의 강물처럼 흥건하게 초록잎들을 피워내고 있는 나뭇가지가 기울어진 달빛을 받으며 가늘게 떨렸다. 수한이 말했다.
   “뮌헨……”
   주안은 그 말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했다.



양소연
소진 이후에는 무엇이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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