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아세로라

   도시의 비둘기들은 지하철역으로 모일 것
   나랑 갈 데가 있다 날개로는 당도할 수 없는 곳

   구구구구 구구구

   우리는 중얼거리고 비명지르지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노래하는지 전혀 모르지


   응급차가 경광등을 돌리며 삐뽀삐뽀 지나간다

   들려? 사람이 열반에 드는 소리! 오늘도 누군가는 해냈다고 애인이 중얼거린다
   내가 이태리에서 송아지로 태어났다면 말이야… 그래도 우리는 만났을 거야… 가난한 너는
   딱 하나의 가방만을 갖게 될 거구… 그래서 지니고 다녔지
   
   열리고 닫히다가 벗겨지고 너덜거리는 마음
   
   조금씩 나아지고 있을까
   조금씩 낡아가는 것일까

   바퀴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저는 아무 데서나 내려주면 됩니다 서서히는 말구요
   빠르고 강력한 거면 제일 좋구요 기사님
   고속도로 복판에서 드르렁드르렁 코를 곤다 다 왔습니다 손님
   바퀴 위에서
   
   어디로든 가세요 날개로는 당도할 수 없는 곳

   구구구구 구구구
   우리는 시끄럽고 앞뒤가 안 맞지
1)

   태양도 책상 아래로 기어들어간 적 있었지 방재 교육 시간이었다
   재난에는 몇 가지 유형이 있다고 했으나 모두 같은 거로 보였다
   
   열리고 닫히다가 벗겨지고 너덜거리는 마음을 위해
   불이라는 열매를 심장 속에 찔러넣고 다녔다



  시

   약속을 정한 순간부터 나는 늦고 있다 각자 미래를 적어오기로 한 순간부터 나는 빈손을 덜렁덜렁 흔들고 있다 이게 뭐람 이럴 거면 왜 미래를 약속한 거람 시는 이미 애가 타고 있고 나는 이미 엉엉 울고 있다

   큰일 났다 나 있지 다 죽은 것처럼 보여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처럼 미소를 잃어버려
   
   아직 서른네 살밖에 안 먹었는데

   훔쳐보고 싶은 게 아무것도 없는 시
   아무것도 훔쳐보고 싶지 않은 사람
   둘은 다르지 서로의 구멍으로 들어가
   하나의 눈동자가 되더라도
   구멍 속에서 구멍을 지우더라도

   천사의 고리가 죽은 철사로 보여? 죄가 미소짓는 것처럼?
   와우산 근린공원이 죽은 두더지처럼 보여? 정오의 커튼이 밤인 것처럼?
   쌓아올린 책더미가 뒤로 물러난 것처럼? 시가 누락된 통지서처럼?
   한 줄도 살아있지 않은 것처럼
   
   절망을 정말로 오기하고 믿고 망가져 버리기
   어깨 위가 사라지는 꿈속이다

   그래서 어쩔 작정이야? 엎어진 큰일을 어떻게 주워 담을 셈이야?
   반으로 쪼개진 나무젓가락 한쪽이 국물 속에 있다 소리나는 R 냄새나는 L
   짝을 맞추려 하면 한쪽 끝만 붉게 물들어있지 쪽쪽
   이 맛은 나무였단 말이군? 겨우 살아있는 것처럼 보여
   
   인간이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미소가 끊이질 않는다
   천사의 고리에 고개를 넣어보는 일처럼
   와우산 근린공원의 땅굴 속에서 고개를 내밀어보는 두더지처럼
   정오의 커튼이 무수한 구멍이라면 어느 구멍을 골라 들어가야 할까
   
   절망은 몇 개의 얼굴을 돌려쓰며 찾아왔다
   머지않아 나에게 무성의해진 절망은 단일한 얼굴로 방문하기 시작한다
   어깨 위를 들고 온다



1) Weird Al Yankovic, 〈Smells like Nirvana〉
유계영
쓰는 일은 어려워서 긴장이 된다.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느낌에 가까워질수록 어렵기 때문에 다시 백지상태다. 미래도 마찬가지다. 흰 종이에 흰 종이를 포개보는 것이다. 불현듯 용기가 솟구쳐오를 때 한 줄 씩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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