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살던 고향은

   책가방만 던져놓고 나가려다 엄마한테 딱 걸렸다. 엄마는 숙제를 안 하면 못 나간다고 했다. 학원 차를 기다리던 한재민과 박수창이 운동장에서 딱지치기를 하고 있었다. 빨리 안 가면 킹왕짱 딱지 자랑할 기회를 놓치고 말 거다. 조바심이 났지만, 얼른 숙제 노트를 폈다. 엄마가 똥 씹은 표정을 했을 때는 말을 들어야 한다. 반항했다간 아예 못 놀게 될 수도 있다.
   다행히 숙제가 많지 않았다. ‘1. 아빠의 고향은? 2. 엄마의 고향은? 3. 나의 고향은?’ 세 질문에 답을 달면 된다. 나는 얼른 연필을 꺼내 ‘1. 북한, 2. 북한, 3. 북한’이라고 적었다. 내가 한 살 때 우리 가족은 북한을 떠났다. 너무 어릴 때 일이라 기억이 안 난다. 노트를 덮고 후다닥 나가려는데 엄마가 나를 붙잡았다. 엄마는 개고 있던 빨래를 옆으로 밀어놓고 내 숙제를 고쳐주었다.
   “자세히 써야지.”
   엄마는 1번에다 평안북도 의주시라고 적고 2번에는 함경북도 길주군, 3번에는 평안북도 신의주시라고 썼다. 목에 수건을 걸고 욕실에서 나온 아빠가 선 채로 물끄러미 숙제를 보더니 한마디 했다.
   “그냥 경기도 광주라고 쓰지.”
   어제가 밤 근무라 집에 있었나 보다. 아빠까지 끼어들다니 얼른 나가 놀긴 틀렸다.
   “이리 줘 봐.”
   아빠가 발을 닦은 수건을 빨래통에 넣으며 말했다.
   “그냥 둬요. 뭘 또.”
   엄마가 다 갠 빨래를 한아름 들고 방을 나가면서 중얼거렸다. 나는 빨리 나가 놀고 싶어서 아빠한테 숙제를 정확히 가르쳐줬다.
   “지금 사는 곳이 아니라 고향을 써 오랬는데요?”
   아빠 얼굴이 막 캐낸 고구마처럼 붉어졌다.
   “그, 그래?”
   아빠는 머쓱해 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나는 엄마가 적어준 그대로 숙제 노트를 가방에 넣고 킹왕짱 딱지를 챙겨 나왔다. 한재민과 박수창이 거기 그대로 있었으면 좋겠다. ‘딱지왕’의 새 필살기 킹왕짱 딱지를 보고 나면 아마 부러워서 입이 딱 벌어질 거다. 자랑할 생각을 하니 가는 내내 마음이 동동거렸다.

   “우리 아빠 고향은 경상남도 마산시입니다. 우리 엄마와 저는 서울에서 태어났어요.”
   새침한 표정으로 황민영이 발표를 마쳤다. 선생님은 칠판에 붙여놓은 커다란 지도에서 서울과 마산을 찾아 스티커를 붙였다.
   다음은 내 차례였다. 나는 ‘함경북도, 평안남도’라는 말을 틀릴까 봐 입 모양으로 여러 번 연습했다.
   “아빠는 평안북도 의주시가 고향입니다. 엄마는 함경북도 길주군이 고향이고, 저는 평안북도 신의주시가 고향입니다.”
   나는 큰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 어려운 글자를 한 자도 안 틀려서 기분이 좋았다. 선생님은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경수는 북한에서 태어났구나.”
   선생님은 함경북도와 평안남도의 위치를 몰라 허둥거렸다. 인터넷을 찾아보고 나서야 겨우 스티커를 붙였다.
   “경수가 서울말을 너무 잘해서 생각지도 못했어.”
   선생님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선생님 말이 좀 걸렸다. 경상도에서 태어난 강준서도, 강원도에서 태어난 박진이도 서울말로 했는데 나한테만 그래서다.
   “방학 숙제로 ‘나의 살던 고향은’이라는 제목의 글짓기를 할 거예요. 게시판에 지도를 붙여놓을게요. 미리미리 인터넷도 찾아보고 준비하면 도움이 많이 되겠죠?”
   기분이 상해서 선생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쉬는 시간 아이들이 와서 물었다.
   “그럼 너 탈북자야?”
   “어?”
   나는 별로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북한에는 정말 먹을 게 없어?”
   북한이라면 나도 텔레비전에서 본 게 전부였다.
   “두 살 때부터 여기 살아서 나도 잘 몰라.”
   “북한 말은? 할 줄 알아?”
   누군가 다시 물었다.
   “아니.”
   “그래? 텔레비전 보면 탈북자들 다 북한 말 하던데…”
   어떤 애가 못 믿겠다는 듯 토를 달았다.
   “다 그런 건 아니야.”
   “아! 시끄러워.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가 없네.”
   엎드려 자고 있던 짝꿍 박지영이 나를 둘러싼 애들을 쏘아보며 말했다. 아이들이 입을 삐죽거리며 자리로 돌아갔다. 말 안 해도 알 수 있었다. 질문을 막 하는 애들한테서 나를 구해 준거다. 박지영은 엄마가 베트남 사람이다. 애들이 박지영한테 ‘다문화’, ‘다문화’ 하고 놀렸을 때 난 가만히 있었다. 어제까진 ‘딱지왕’이던 내가 ‘탈북자’가 되고 보니 박지영에게 미안해졌다. 나도 그때 박지영처럼 말해줄 걸 그랬다.

   “엄마! 엄마는 왜 북한 말 안 써?”
   엄마는 숟가락으로 김치찌개를 뜨다 말고 나를 쳐다봤다.
   “왜? 누가 뭐라고 해?”
   “친구들이 왜 북한 말 안 쓰냐고 물어보길래…”
   “뭐야. 너희 반 애들 어떻게 알았어? 네가 말했어?”
   갑자기 누나가 짜증을 내며 끼어들었다.
   “난 몰라. 아직 우리 반 애들은 아무도 모른단 말이야. 경수 너 이제 학교에서 나 아는 척하지 마!”
   언제는 학교에서 아는 척했다고……. 사춘기 누나랑은 무슨 말이 안 된다.
   “경미야. 우리가 북에서 온 게 부끄럽니?”
   엄마가 누나를 보면서 물었다.
   “그건 아니지만, 그냥 싫어. 질문도 막 하고.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 같지 않아. 뭐 거지 취급을 하지 않나. 자존심 상해.”
   나는 누나 마음을 조금 알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아빠 엄마는 서울말을 쓰는 거야. 서울말을 쓰면 이상한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없어.”
   아빠가 밥을 김에 싸서 입에 넣으며 말했다.
   “거 봐. 그냥 광주라고 쓰라니까. 애들이라고 뭐 다른 줄 알아?”
   아빠가 입을 반쯤 다물고 우물우물 말했다.
   “그게 뭐. 우리가 죄지은 것도 아니고.”
   엄마가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딱지를 열일곱 개 접었다. 학교에서 오자마자 접기 시작했는데 이것밖에 안 된다. 한꺼번에 너무 많이 접어선지 팔이 저렸다. 우리 반 애들한테 골고루 나눠줄 생각이다. 애들이 딱지를 받고 나를 다시 ‘딱지왕’이라고 불러줬으면 좋겠다. 아무래도 나는 ‘탈북자’보단 ‘딱지왕’이 좋았다. 이번 달엔 엄마가 남은 전단을 많이 줬다. 종이가 저번 것보다 두껍고 빠닥빠닥 거린다. 이런 종이는 잘 접어 모서리를 날카롭게 문질러 놓으면 잘 넘어가지 않는다. 킹왕짱까진 아니라도 짱 정도는 된다.
   “드르렁드르렁. 커 억!”
   한쪽 구석에서 낮잠을 자고 있던 엄마가 코를 골다 말고 숨을 몰아쉬었다. 전단지를 많이 돌리고 온 날은 더 많이 코를 곤다. 엄마는 시내에서 전단지를 돌리는데 요즘은 ‘올림픽 특수’라 전단지 일이 많다고 했다. ‘올림픽 기념 특별 세일 전자 마트’, ‘올림픽 특가 세일 슈즈 룸’ 전단지 마다 올림픽이란 말이 찍혔다. 김승주는 방학을 하면 강원도에 사는 삼촌네에 가서 같이 올림픽을 구경 할 거라고 자랑을 했다. 봅슬레이랑 스피드 스케이팅 티켓도 벌써 끊어놨다고 했다. 좀 부러웠다.
   “우리도 올림픽 보러 가면 안 돼요?”
   어제 뉴스를 보다가 내가 묻자 아빠가 말했다.
   “경수야. 이런 날씨에 올림픽 보러 갔다가는 감기 걸려. 뜨끈한 집에서 텔레비전으로 보는 게 낫지. 굳은 차비로 치킨도 시키고.”
   올림픽 보러 갈 돈이 없다는 소리다. 여름 방학 때도 아빠는 똑같이 말했다.
   “경수야. 이런 날씨에 바다에 놀러 갔다간 쪄 죽어. 시원한 집에서 텔레비전이나 보는 게 낫지. 수박이나 한 통 큰 거로 사자.”
   나도 그냥 해 본 말이었다. 여행 좀 다녀본 애처럼 말해보고 싶었다. 체험학습 게시판에 매번 다른 해외여행 사진을 붙이는 황민영처럼 말이다.
   스물세 번째 딱지를 접고 있는데 엄마가 부스스 일어나 앉았다.
   “불 켜고 하지.”
   엄마가 머리를 고쳐 묶으며 말했다.
   “엄마 자라고.”
   엄마가 딱지를 접고 있는 나를 뒤에서 꼭 안아주었다.
   “우리 아들. 고맙네.”
   나는 딱지 접는 데 방해가 돼서 엄마 팔에서 빠져나오려 애썼다.
   “아빠 오늘 나이트 근문데 우리 저녁으로 짜장 라면 끓여 먹을까?”
   엄마가 부엌으로 나가면서 말했다.
   “내 건 오이 빼고!”
   엄마가 못 들었을까 봐 한 번 더 말했다.
   “오이는 빼고! 단무지 안 줘도 돼요!”
   어차피 단무지는 없어서 주지 않을 테지만 이번에도 그냥 한번 말해봤다. 북경장에 짜장면을 시키는 것처럼 말이다. 어제 탕수육이랑 짜장면을 먹었다고 자랑한 한재민 생각이 나서 그냥 한번 말해보고 싶었다.

   “약속 잊으면 안 돼요. 와이에이치씨 두 마리에요.”
   아침에 아빠랑 지역아동센터 앞에서 헤어지면서 손가락을 걸었다. 도장도 찍고 복사도 하고 할 수 있는 건 다했다. 아빠가 시장 통닭을 사 올까 봐 그랬다. 나도 한 마리 시키면 한 마리를 더 준다는 와이에이치씨를 먹어보고 싶었다. 두 마리가 오면 닭 다리가 네 개다. 누나랑 싸우지 않고도 다리를 두 쪽 먹을 수 있는 거다. 누나는 나한테 고마워해야 한다. 올림픽 보면서 치킨을 먹기로 하지 않았느냐고 아빠를 조른 사람이 바로 나니까. 빨리 집에 가서 와이에이치씨 광고지를 찾아봐야겠다. 날짜가 남아있는 콜라 서비스 쿠폰이 있을지도 모른다. 신발을 신고 나오는데 센터 마당에서 기다리고 있던 김지운이 나를 잡았다.
   “고경수. 딱지 안 쳐?”
   “나 바뻐. 개막식 보러 가야 돼. 와이에이치씨 두 마리 치킨도 시킬 거거든.”
   나는 ‘와이에이치 두 마리’에 힘을 주고 말했다.
   “그래? 그럼 내일 봐.”
   김지운은 딱지치기를 같이할 다른 애를 찾으려는 듯 두리번거렸다.
   현관문 앞에 섰을 때 김지운이 누군가에게 하는 말이 들렸다.
   “고경수는 올림픽 보러 가야 한대”
   나는 와이에이치씨 두 마리 치킨도 먹을 거라고 말하려고 몸을 돌렸다.
   “와이…”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고경수 북한 응원 잘해라.”
   김지운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나는 치킨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나 북한 응원 안 하는데 대한민국 응원할 건데.”
   나는 어정쩡하게 서서 말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 치킨보다는 김지운 말이 더 많이 생각났다. 여러 가지 생각이 가시처럼 삐죽삐죽 솟았다.

   “그럴 수도 있지. 우리가 북에서 왔으니까.”
   엄마는 김지운 말이 이상하지 않다고 했다.
   “신경 쓰지 마. 둘 다 응원할 수도 있는데 뭐. 북한, 대한민국 다 하지. 엄만 둘 다 응원할 건데?”
   엄마는 내가 벗어 놓은 점퍼와 옷을 주워들며 말했다. 김지운이 말한 건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엄만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 저번에는 같은 반 친구들이 ‘탈북자’라고 놀린다니까 ‘새터민’이라는 좋은 말을 가르쳐주라고 했다. 내가 원하는 건 다시 ‘딱지왕’이 되는 건데…. ‘탈북자’나 ‘새터민’이나 나한텐 거기서 거기다.
   “얘기는 그만하고 어서 씻고 나와 일기 써.”
   엄마가 욕실로 나를 몰았다. 나는 팬티 바람으로 세수를 하고 발을 씻었다. 세면대가 고장 나서 찬물 밖에 나오지 않았다. 물이 엄청 차가워 손이 다 아팠다. 씻는 둥 마는 둥 하고 나와서 엄마가 내준 내복에 팔을 꿰었다. 내복이 작아 목 입구가 얼굴에 꽉 껴버렸다.
   “올해까지밖에 못 입겠네.”
   내가 한참을 버둥거리는 걸 보고 엄마가 한마디 했다. 욕실을 나오자마자 따뜻한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 갔다. 밥상에 일기장을 폈는데 뭘 써야 할지 생각이 안 났다. 김지운이 한 말이 걸렸다고 쓰면 선생님도 이 일을 알게 될 거다. 나는 왠지 선생님이 알게 되는 게 싫었다.
   “엄마! 아빠한테 전화해봐. 어딘지. 치킨 먼저 시켜도 되는지도 물어봐.”
   건넌방에 있던 누나가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시킨다고 하고 싶었는데 갑자기 눈꺼풀이 무거워져 입을 열 수 없었다. 잠이 몰려오고 있었다.

   “경수야! 치킨 먹어. 먹고 자.”
   치킨이라고? 아빠 목소리에 눈이 번쩍 떠졌다.
   “내 와이에이치씨!”
   벌써 치킨이 왔나 보다. 고소한 치킨 냄새에 코가 먼저 마중 나와 벌름거렸다.
   “이게 뭐야!”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상에 놓인 치킨은 와이에이치씨 두 마리가 아니라 순살 치즈 솔솔 이었다. 게다가 양도 엄청 적어 보였다.
   “아빠! 내가 와이에이치씨 두 마리 치킨이라고 했잖아.”
   아빠는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어. 그래. 와이에 그래 그거 경미한테 시키라고 했는데 이거 아냐?”
   나는 누나를 확 째려봤다. 누나는 사이키 밴드 얼굴이 대빵만하게 찍힌 치킨집 포스터를 들고 자기 방으로 쏙 내뺐다. 저 포스터 때문에 날 배신한 거다. 고경미! 절대 용서 못 한다!
   “경수야 조금만, 조금만 조용히 해줄래?”
   엄마가 어쩐 일인지 텔레비전 앞에 몸을 바짝 붙이고 앉아 있었다.
   “엄마! 고경미가, 고경미가 제 맘대로.”
   엄마가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응응.”
   “응이 아니고 고경미가 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고경미가…”
   텔레비전 쪽으로 돌아앉은 엄마한테 이르려고 갔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엄마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엄마 울어?”
   “아니. 안 울어. 울긴. 눈에 뭐가 들어갔나 보지.”
   엄마가 손가락으로 눈가를 꾹꾹 찍으면서 말했다.
   아빠는 물끄러미 엄마를 쳐다봤다.
   “네 엄마 고향 생각나나 보다.”
   아빠는 냉장고에서 소주를 한 병 꺼내와 작은 잔에 따랐다.
   텔레비전 속 사람들이 댄스음악에 맞춰 춤을 췄다. 불꽃이 팡팡 검은 하늘을 덮고 증강현실이 화면 가득 번쩍거렸다. 거대한 종이 탈을 쓴 막대 인형들이 줄이어 나오고 한쪽에선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북을 두드렸다. 딱히 울 만한 장면은 없어 보이는데 엄마는 눈물이 나고 아빠는 안 먹던 소주를 따랐다. 왁자지껄한 개막식 생중계와 달리 우리 집 분위기는 비 오는 날 운동장처럼 축축 가라앉기만 했다.
   “남북 단일팀 선수들이 성화를 들고 가파른 언덕을 오릅니다. 그동안 경색되었던 남북 관계의 어려움을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감동적이네요.”
   아나운서 아저씨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가 고개를 끄덕끄덕하다가 휴지까지 뽑아서 홀지락홀지락 눈물을 훔쳤다.
   아나운서 아저씨 말대로 뭔가 감동적이라서 그런가 보다.
   나는 아쉬운 대로 치즈 솔솔을 포크로 찍어 먹으며 감동이라는 걸 느껴보려고 했다. 그런데 잘 안됐다. 엄마는 계속 눈물을 흘리고 아빠는 소주잔을 비우는데 나는 치즈 솔솔을 씹으면서도 와이에이치씨 두 마리 치킨이 생각나서 입맛만 쩝쩝 다셨다.
   “엄마 북한 사람들이 텔레비전에 나오니까 고향 생각나?”
   나는 눈이 빨개진 엄마에게 물었다.
   “그러게. 엄마도 이럴 줄 몰랐네.”
   “북한에 돌아가고 싶어?”
   나는 조금 망설이다 물었다.
   “엄마가 어디 갈까 봐 걱정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엄마 대답을 기다렸다.
   “어디 안 가. 우리 경수랑 경미가 있는 곳이 내 집이야.”
   엄마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부엌에서 덜그럭덜그럭 설거지하는 소리가 들렸다. 개막식이 다 끝나기도 전이었다. 엄마는 다시 텔레비전 앞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괜한 걸 물어봤나 보다. 아빠도 조용히 소주 한 병을 비우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개막식 중간에 누나가 채널을 돌렸는데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식어 빠진 치즈 솔솔만 남았다. 처음엔 양이 엄청 적어 보였는데 다 남겼다. 뭔가 속이 꽉 막힌 것 같아서 더 먹을 수가 없었다.

   아침부터 싸락눈이 내렸다. 엄마는 계속 창밖을 보며 눈이 그칠 때를 기다렸다. 눈삽을 들고 나가는 엄마를 따라나섰다.
   “추운데 들어가 있어. 손 시려.”
   나는 엄마를 향해 장갑을 흔들어 보였다. 잠깐 눈을 쓸었을 뿐인데 등에서 땀이 흘렀다.
   “경수야 대충하자. 눈이 또 올 것 같네.”
   “어떻게 알아? 눈이 올지 안 올지?”
   엄마가 빙그레 웃었다. 눈가에 주름이 올랐다가 사라졌다.
   “엄마 어릴 때 살던 곳은 여기보다 눈이 더 많았어. 하늘만 봐도 알지.”
   엄마는 멀리 하늘 끝을 보면서 허리를 폈다.
   집으로 들어온 우리는 두꺼운 외투를 벗어놓고 차를 마셨다.
   “엄마 어릴 때 이야기 들려줘.”
   나는 코코아를 홀홀 불어가며 말했다.
   “왜 갑자기?”
   “숙제야 방학 숙제. ‘나의 살던 고향은’ 글짓기.”
   “숙제를 뭐 그렇게 해? 뭐라도 가지고 와서 쓰면서 해야지…”
   나는 노트와 연필을 가지고 엄마 옆에 앉았다.
   “엄마 고향이 함경북도 길준건 알지? 개마고원이라고 들어봤니? 거기 근처야. 겨울이 끝 간 데 없이 길지. 엄지 이모랑 엄마가 학교 끝나고 밭에 나가면 바람이 매워서 늘 울었어.”
   엄마는 어릴 적 이야기를 천천히 들려주었다. 며칠 전보다 훨씬 밝은 얼굴로. 다행이었다.
   점심을 먹고 난 뒤 책상에 앉았다. 미뤄두었던 숙제를 하기로 했다. 엄마가 들려준 개마고원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꼭꼭 정성스럽게 쓰고 싶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고경수



   엄마는 올림픽 동안 뉴스를 꼭 챙겨봤다. 드라마 밖에 안 보던 사람인데 참 많이 변했다. 북한 방문단 소식이 나올 때마다 그랬다. 뉴스가 시작하면 텔레비전 앞으로 달려갔다. 뉴스가 끝나면 엄지 이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니까 언니 이러다가 북에 가 볼 수 있게 되는 것 아님둥? 그럴 수 있음 얼마나 좋겠슴메.”
   안 하던 북한 말도 막 했다.
   “어! 엄마 북한 말 엄청 잘하네.”
   내가 놀리듯 말하자, “북한 말은 뭐 다 같은 줄 암둥? 이건 함경도 말 아님메.”라며 농담까지 한다. 목소리에 콧소리까지 섞는다. 엄마가 좋다니 뭐 나도 좋다. 나는 고향을 기억 못 한다. 고향은 나한테 별로 안 중요하다. 엄마는 다르다. 고향을 많이 그리워한다. 전에는 그런 줄 몰랐는데 올림픽 덕분에 알았다. 엄마가 고향에 가보고 싶어 한다는 것도.
   우리 엄마 고향은 개마고원이다. 한반도의 지붕이라고 한다. 해발 천오백 미터가 넘는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추운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쌀농사는 못 짓는다. 양과 염소를 기르고 감자를 키운다. 개마고원은 풍산개의 고향이다. 풍산개는 토종개 중에서 몸집이 제일 크다. 속 털이 많고 눈, 비, 바람을 잘 견딘다.


   숙제를 하다 잠깐 고개를 들었다. 다시 눈이 내리고 있었다. 또 눈이 올 것 같다는 엄마 말이 맞았다. 엄마는 걸레로 방을 닦다 가끔 밖을 내다봤다. 눈이 그치면 엄마는 다시 눈삽을 들 거다. 나도 비를 들고 도울 것이다. 하늘이 뿌옇게 흐려졌다. 눈송이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눈이 그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거 같았다. 나는 다시 연필을 잡았다.



최수연
허풍선이, 딱지왕, 뻥쟁이, 능청이, 수다쟁이, 삐딱이가 복작거리는 교실을 꿈꿉니다. 피부색, 출신지, 신체장애가 있고 없고는 신나게 노는데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노는데 다른 걱정이 들지 않도록, 바탕을 만들고 응원하는 일을 멈추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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