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의 일요일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은 어제였다. 일 년만 더 살면 백 살인데.

    오늘도 차 안에서는 침묵이 흘렀다. 나는 아무 말이나 꺼냈다.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면 엄마가 울 수도 있으니까 할머니 이야기로.
   “어제는 할머니 일찍 왔다 가셨어? 인사도 못했네.”
   엄마는 브레이크를 평소보다 거칠게 밟았다.
   “할머니는 오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인사를 하냐?”
   “안 오셨어? 왜요?”
   “원래 노인들은 장례식에 안 오는 거야.”
   하지만 남편이 죽었는데?
   엄마가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말해서 속으로만 물었다. 아빠는 조수석을 뒤로 젖히고 누웠다. 눈을 감은 아빠를 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할머니 혼자 집에 계시면 슬프겠다.”
   “왜 혼자 있어? 이모랑 있지.”
   “그럼 이모는 장례식에 언제 와요?”
   “할머니랑 있어야지, 어떻게 오겠냐?”
   하지만 아빠가 죽었잖아!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건 장례식장에 도착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잠자코 있어보니 장례식장이 한층 더 썰렁하게 느껴졌다. 지금이 이른 아침이라서 그런 것인지 오늘이 일요일이라서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빠와 나는 섬유린스 냄새가 올라오는 검정색 재킷을 걸쳤다. 어제부터 입었던 것인데 아직도 냄새가 심했다. 게다가 사이즈는 너무 컸다. 나는 분향소 입구에 방명록을 놓고 앉은 사촌에게 갔다. 한쪽 팔에 누르스름한 상장을 둘러서인지 아니면 키가 커서인지, 사촌은 그런대로 재킷이 맞았다. 혹시 나하고는 사이즈가 다른가, 바꿔 입어보자고 할까, 막상 입어보니 사이즈가 같으면 굴욕이겠지. 나는 방명록 옆에 놓인 국화들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너는 친구들한테 얘기했어?”
   사촌이 갑자기 물어왔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흔들다 멈칫했다. 어제 오후, 전화가 걸려왔을 때 나는 학원에서 5월 모의고사를 보고 있었다. 내가 가방을 싸서 교실을 나가는 걸 기억하는 애가 있을까. 다들 문제를 푸느라 정신이 없었을 텐데. 재수학원 종합반 아이들 중에서 내가 친구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있던가. 곰곰이 생각하는데 사촌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나도 얘기 안 했어. 애들이 부담스러워 할까봐.”
   놀랍게도 사촌은 슬퍼 보였다. 놀랍게도, 라고 내가 생각했다는 것에 또 놀랐다. 그러고 보니 나는 지금까지 한 순간도 슬프지 않았다.

    슬프지도 않으면서 상복을 입고 방명록을 받고 있다니. 하지만 죄책감은 이내 사라졌다. 일요일 아침부터 누가 장례식에 오겠어. 나는 지루함을 견디며 되도록이면 사촌과 대화를 나누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건 별로 어렵지 않았다. 사촌은 슬펐기 때문에 말이 없었고 나는 슬프지 않은 걸 숨기고 싶어서 말을 안 했다. 대신에 나는 어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엄마는 어제보다 훨씬 밝은 모습이었는데, 장례식장 전체에서 우리들의 사정이 가장 좋았기 때문이었다. 할아버지는 7호실의 아기 엄마처럼 어린 자식을 두고 죽지 않았으며, 5호실의 할머니처럼 치매로 몇 년 동안 자식들을 고생시키지 않았고, 2호실의 대학생처럼 부모의 마음에 못을 박거나, 1호실의 아저씨처럼 가족들이 손해배상금을 걱정하게 하지도 않았다. 무엇보다도 할아버지는 나이가 많았다.
   “아까워, 일 년만 더 살면 백 살인데.”
   젓가락을 건네며 엄마가 혀를 찼다. 아직 11시 밖에 되지 않았지만 삼촌과 아빠가 동시에 분향소를 비우면 안 되기 때문에 아빠 먼저 점심을 먹기로 했다. 나도 아빠와 마주보고 앉았다.
   “그러게, 지팡이를 못 받게 됐네.”
   아빠의 말에 따르면 백 살이 되면 동사무소에서―주민센터야, 라고 내가 정정했다―지팡이를 준다고 했다. 난데없이 무슨 지팡이냐고 황당해하는 내게 엄마와 아빠는 그런 상식도 없냐며 어이없어했다.
   “아무튼 아버님은 마지막까지 참 정정하셨지.”
   나는 불현듯 궁금해졌다.
   “할아버지는 왜 그렇게 건강하게 오래 사셨어?”
   함경도 출신인 할아버지는 한국전쟁이 끝난 뒤에 남한에 남아서 공무원이 되었고 정년퇴직을 했다. 그건 엄마와 아빠가 결혼하기도 전이었고, 다시 말해 내가 태어나서 성인이 되는 세월 동안 할아버지는 공무원 연금으로 생활을 해왔다는 것이다. 독서 말고는 이렇다 할 취미가 없었던 할아버지의 삶은 평온하고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스스로 정갈하게 관리하던 할아버지의 방은 두 딸들은 물론 할머니도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들어갈 수 없었다. 그렇게 정정하던 양반이니 감기가 급성폐렴으로 발전하지 않았더라면 무난히 백 살을 채웠을 거라고 엄마는 확신했다.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대부분 엄마의 기억에서 나왔지만 아빠가 수시로 끼어들었다. 술을 한 모금만 마셔도 붉게 열이 오르던 피부, 그럴 때면 튀어나오던 이북 사투리, 아침마다 뿌리던 향수, 포마드를 발라서 윤기가 흐르던 백발. 엄마와 아빠가 말하는 할아버지는 내가 모르는 할아버지였다. 나는 어제 병원에서 보았던 밀랍색 피부와 차갑던 온도 말고는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육개장을 국물까지 다 비운 아빠가 재킷을 걸쳤다. 나보다 덩치가 그렇게 크지 않은데도 아빠한테는 옷이 제법 잘 맞았다. 엄마가 일회용 젓가락과 접시를 한데 모았다. 나도 남은 떡과 과일을 옮겨 담았다. 사과 한 조각을 집는 순간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조급하게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는 아침에 사과를 드셨어.”
   그때 나는 일곱 살이었다. 아침이라기보다는 새벽에 가까운 시간, 누가 깨우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눈이 떠졌다. 검은색 자개장롱이 한쪽 벽을 차지한 외갓집 안방에서 나 혼자 화려한 꽃무늬가 그려진 이불을 덮고 있었다. 거실 역시 아무도 없었다. 주위가 다 어두컴컴한데 희미한 불빛이 한 줄기 부엌에서 새어나왔다. 하지만 부엌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가 식탁에 홀로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할아버지는 나를 항상 형욱이라고 불렀고 그건 사촌의 이름이었다. 나는 부엌문 뒤에 몸을 숨긴 채로 할아버지를 올려다보았다
   아삭.
   상쾌한 소리가 났다. 할아버지는 사과를 먹고 있었다. 껍질이 붙은 상태로 조각난 사과였다. 부엌의 노란 조명을 받아서 붉은 껍질이 반짝거렸다. 노랑이나 초록이 하나도 섞이지 않은 채로 붉기만 해서, 사과는 가짜처럼 보였다. 할아버지는 한참 동안이나 사과를 씹었다. 아주 여러 번 턱이 움직였다. 입술 사이로 맑은 물이 한 방울, 턱 끝까지 흘러내렸다. 할아버지는 엄지로 그것을 문질렀다.
   아삭.
   할아버지가 사과 한 알을 다 먹을 때까지 나는 계속 쳐다보았다. 접시에는 씨가 붙은 속대와 짧은 과도만 덩그러니 남았다.
   “무슨 꿈을 꿨나보네.”
   아빠는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듣지 않고 먼저 나갔다. 엄마는 얼른 가서 교대하라고 나를 떠밀었다.

   점심을 먹고 돌아온 사촌에게서는 담배 냄새가 났다. 조금이라도 떨어져 앉고 싶어서 엉덩이를 움찔거리는데 사촌이 말했다.
   “나는 할아버지하고 운동을 해본 적이 있어.”
   “정말?”
   “언젠가 할아버지 방에서 놀고 있는데, 따라하라면서 가르쳐주셨어.”
   사촌과 함께 운동을 하는 할아버지를 상상해보았다. 나는 문틈으로만 훔쳐보았던, 책상과 침대로 에워싸인 작은 공간. 그 안에서 둘은 어떤 식으로 팔다리를 움직이고 근육을 단련했을까. 할아버지는 사촌의 어깨를 붙잡고 구부렸다 폈다 하면서 지도했겠지. 차갑지도 창백하지도 않을 손길로.
   “해봐.”
   내 말에 사촌은 고개를 저었다.
   “기억이 안 나.”
   거짓말. 나는 순간적으로 욱했지만 할아버지는 사촌을 예뻐했으니까 정말로 방에서 둘이 운동을 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사촌은 정말로 그 운동을 잊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것 말고도 할아버지와 함께한 시간이 많았을 테니까. 그래서 나는 다시 차분해졌다.
   “할아버지가 오래 사신 건 운동도 운동이지만 아침에 사과를 드셔서가 아닐까?”
   “할아버지는 아침 안 드셨잖아.”
   “새벽에, 우리가 아침 먹기도 전에 말이야.”
   사촌은 내 말에 집중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아침에 꼭 굴비를 구워주셨는데. 나중에 가면 그게 참 생각나겠지?”
   그렇게 말하는 사촌은 슬퍼 보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할머니는 아침에 굴비를 구워주셨어. 노릇하고 바삭한 껍질을 벗기면 김이 났지, 속살은 보드랍고. 열심히 맞장구를 치는데 사촌이 물었다.
   “너 배고파?”

    12시가 넘자 손님들이 제법 찾아왔다. 손님들은 하나같이 엄마나 아빠와 비슷한 나이로 보였다. 할아버지의 형제자매나 친구들은 다 돌아가셨거나 노인이라서 장례식에 오지 않는 거겠지. 나와 사촌은 어른들이 부를 때마다 분향소 옆 식당으로 가서 인사를 하고 다시 방명록으로 돌아오고는 했다. 식당에서는 할아버지가 일 년만 더 살면 백 살이었다는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흘렀다. 먼저 온 손님이 나중에 온 손님에게 계속해서 이야기를 전달해주었기 때문에 멈추지 않았던 것인데, 그건 일종의 게임처럼 보였다. 딱히 재미있지는 않아도 시간을 보내기에 적당하고 특히 잘 모르는 손님들끼리 합석을 해서 어색할 때의 화제로 아주 적절했다. 그 다음으로 인기 있는 화제는 나와 사촌이었다. 손님들은 우리를 불러놓고 비슷비슷한 질문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사촌의 얼굴은 무슨 질문을 받아도 변함이 없었다. 대학생입니다, K대 1학년입니다, 감사합니다. 전공까지 묻는 손님들도 간혹 있었지만 그렇다 해도 결론은 늘 같았다. 경영학입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매번 대답을 바꿨다. 재수생인데요, 아직 공부중입니다, 내년에는 가야죠. 이런 말들을 나는 웃으면서도 해보고 걱정스럽게도 해보고 무심하게도 해보았다. 방명록이 한가할 때면 손님들은 우리를 더 오래 붙잡았다. 주량이 얼마냐, 여자친구는 있냐, 운전은 할 수 있냐, 졸업하면 뭐하고 싶냐. 나는 좀 피곤했다. 하지만 괴롭지는 않았다. 내가 사과나 떡을 먹으며 대답을 고르고 있다보면 종종 엄마가 끼어들고는 했으니까.
   “외손자라도 얘는 임종을 지켰잖아.”

    어제, 그러니까 토요일 오후. 중환자실 자동문이 열리고 제일 안쪽까지 들어가면 침대 주위에 쳐놓은 커튼 사이로 엄마와 숙모가 보였다. 침대 옆에는 작은 모니터. 화면에는 검은 바탕에 초록색 선이 수평하게 흘렀다. 할아버지의 얼굴은 엄마와 숙모에게 가려서 보이지 않았다. 하얀 담요 아래로 드러난 발목. 누리끼리하면서도 회색이 도는 복숭아뼈를 보자마자 나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았다. 커튼 안으로 들어가보니 숙모는 할아버지의 귓전에 대고 뭔가를 소곤거리고 있었다. 입술이 귀에 닿을 것처럼 가까웠다. 눈물이 콧등을 타고 내려가 할아버지의 뺨으로 떨어졌다. 엄마가 문득 할아버지의 어깨를 붙잡고 아버지, 아버지, 하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이를 꽉 물었다
   “아직 따뜻해, 만져봐.”
   고개를 든 엄마가 말했다. 뭐라고요? 하마터면 되물을 뻔했다. 엄마의 눈이 너무 붉어서 아파 보였다. 주저하는 티가 나지 않기를 바라며 내 손을 할아버지의 손등에 얹었다. 밀랍색의 죽은 손등 위에 놓인 발그레한 손. 할아버지의 손은 차갑고 딱딱했다. 손을 떼고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했다.
   후루룩.
   맞은편 침대에 앉은, 모르는 할아버지가 밥을 먹고 있었다. 중환자실에서도 밥을 먹는구나. 하기야 살아 있으면 밥을 먹어야지. 모르는 할아버지는 식판에서 수그린 고개를 들지 않았다. 미역국에 만 흰쌀밥. 시금치나물과 멸치. 열심히 밥을 먹는 할아버지의 침대 머리맡에도 작은 모니터가 있었다. 검은색 화면 속에서는 초록색 선이 힘차게 구불거렸다. 얘는 어디 간 거야, 커튼 안쪽에서 엄마가 나를 찾는 목소리.

    나보고 영미 아들이냐고 묻는 손님도 있었다. 그때마다 고개를 젓고 이모는 할머니를 모시느라 못 오셨다고 대답했다. 그런 일이 세 번 반복되자 나는 엄마에게 사촌형의 전화번호를 물어보았다.
   형은 전화를 금방 받았다. 나는 내 이름을 성까지 붙여서 말했다. 그래, 오랜만이다. 형은 자연스럽게 대답했고 대화는 끊어졌다. 빨리 오라고 하는 건 너무 재촉하는 것 같고, 언제 오냐고 묻는 건 너무 집요한 것 같아서 머뭇거리는데 형이 장례식장 몇호실이니? 하고 묻고는 전화를 끊었다. 어쩌면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을까.
   하기야 형은 원래 그랬다. 지금부터 구 년 전, 나는 이모부가 이모를 걷어차는 걸 봤다. 그 장소는 외갓집 마당이었다. 잔디의 초록색, 공중을 가르던 이모부의 갈색 구두, 이모부의 양팔을 붙들던 아빠와 삼촌, 허공을 향한 두어 번의 발길질. 아차, 정확히는 이모부가 이모를 걷어차려고 하는 걸 봤구나. 차근차근 기억을 떠올려보면 이모는 확실히 이모부의 발차기를 피했지만, 나는 자꾸만 이모부가 이모를 걷어찼던 것 같다. 엄마와 숙모는 이모를 감쌌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철쭉 옆에 서서 아이고 이서방, 하고 소리를 질렀고. 나와 사촌도 뭔가 소리를 쳤던가 아니면 그냥 손만 붙잡고 있었던가. 그리고 형은, 형은 어디에서 뭘 하고 있었더라.
   아무튼 그때 이후로 나는 두 번 다시 이모부를 보지 못했다. 누구도 이모가 이혼했다는 말을 해주지 않았기에 맞으면서 그냥 사는 줄 알았다. 내가 중학생이 되고 형이 대학에 들어가던 그해 설날에 할머니가 이모를 붙잡고 울 때까지 몰랐다. 할머니는 이모보고 혼자서 키운 아들을 좋은 대학에 보냈다며, 정말 장하다고 울었다. 이모와 엄마도 부둥켜안고 울었고 숙모는 손수건으로 눈을 가렸다. 할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고 거실에 남은 남자들은 아무도 울지 않았다. 그 순간은 참 불편했다. 그렇게 울 일도 아니었는데. 이건 내 말이 아니라 형의 말이다. 형은 자기가 대학에 붙은 건 한부모가정 전형 덕분이었다고 했다. 순전히 운이었다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형은 몸에 잘 맞는 검정색 양복을 입고 왔다. 아래위로 나를 훑는 눈빛에 괜히 움츠러들었다. 이내 내게서 시선을 돌린 형은 침울한 표정으로 제단에 국화를 올리고서 잠시 기도를 했다. 나는 조금 놀랐는데 첫째, 형이 교회를 다니는 줄 몰랐고 둘째, 형이 너무 슬퍼 보였기 때문이었다. 형은 할아버지와 어떤 기억이 있어서 저렇게 슬픈 것일까.
   형과 사촌은 악수를 나누었다. 나는 형을 식당으로 인도해서 영미 아들을 찾던 손님들에게 소개했다. 그 순간 형은 활짝 웃었다. 나도 허둥지둥 표정을 바꿨다. 형과 손님들 사이에서는 형이 작년에 외국계 회사로 옮겼다는 것과 여자친구와 헤어졌다는 것, 그리고 할아버지가 일 년만 더 살면 백 살이었다는 이야기가 돌림노래처럼 오갔다. 분향소로 돌아가려는 나를 형이 끌어당겨 옆에 앉혔다. 밥 한 공기를 다 먹은 형에게 아빠가 맥주를 따라주려고 했다.
   “차를 가져와서요.”
   형은 웃으며 사양했다.
   “그럼 커피 타줄게.”
   엄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커피는 나가서 마실게요, 애들 데리고.”
   어, 방명록 비우면 안 되는데. 형은 내 어깨에 가볍게 손을 올리고 토닥거렸다. 그래도 잠시만, 형우야.

    사촌은 방명록을 지키겠다고 해서 나와 형 둘이서만 차를 탔다. 차체가 높은 SUV라서 조수석에 오르니 시야가 넓어졌다. 본네트 끄트머리로 날렵한 재규어가 보였다. 조수석에 등을 기대자 의자가 움직여서 저절로 내 몸에 맞춰졌다. 오, 하고 감탄사가 나왔다.
   “이 모델이 SUV지만 퍼포먼스는 SUV 같지가 않다니까. 차체도 경량 알루미늄이고 서스펜션도 그렇고 엄청 민첩해, 승차감도 세단 같지 않냐? 다른 SUV하고는 완전 달라, 가격부터가.”
   나는 아빠의 그랜저 말고는 비교할 대상이 없었기에 형이 말하는 대부분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또 언제 이런 차를 타게 될지 모른다는 것만은 분명히 이해했기에 잠자코 고개를 끄덕이며, 이 순간을 기억하려고 애썼다. 반짝거리는 내부, 새 차 냄새, 엉덩이 밑으로 느껴지는 엔진의 진동, 매끄러운 시트의 감촉. 안전벨트를 만지작거리는 나를 향해 형이 피식 웃었다.
   “너는 어디서 그런 부대 자루를.”
   당장 재킷을 벗었다. 얼굴이 후끈거렸다. 형의 말이 이어졌다.
   “일 년만 더 사시면 백 살이었다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헛기침을 했다. 그래도 건강하셨다잖아, 하려는데 형이 빨랐다.
   “이 동네에는 왜 맥도날드도 없어.”
   병원 주위에서는 재개발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전통 시장과 공사중인 구식 건물과 갓 완공된 새 건물이 뒤섞여 있었다. 형이 원하는 크고 쾌적한 프랜차이즈 카페, 가령 스타벅스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롯데리아를 찾아냈지만 형은 고개를 저었다. 맥카페는 괜찮지만 롯데리아는 안 돼.
   우리가 막 사거리로 나왔을 때였다. 초록색 간판과 붉은 네온사인이 내 눈에 들어왔다. 핫 나우(HOT NOW)라고 적힌 글씨가 붉게 반짝거렸다. 초록색 간판을 손가락질하며 저기는 어때, 하고 물었다. 형은 한숨을 쉬고 차를 돌렸다. 크리스피크림에는 주차장이 없어서 옆 건물인 주유소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차를 세우자마자 주유소 직원이 달려왔다. 커피 마시고 와서 기름 넣을게요, 그렇게 말한 형은 내게 속삭였다. 유지비 장난 아니야. 나는 이해했다는 표정이길 바라며 미소를 지었다.

    “넌 할아버지 돌아가시는 거 봤다며?”
   나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고 형은 더이상 묻지 않았다. 유리창에는 핫 나우라는 붉은 글자가 계속 반짝거렸지만 도넛 기계는 멈춰 있었고 언제 만들었는지 모를 도넛은 차가웠다. 그래도 커피가 너무 썼기 때문에 나는 도넛을 금방 다 먹었다. 형은 자기 몫의 도넛에는 손도 대지 않고 창밖만 바라보았다. 포장해갈까,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슬슬 일어나자.”
   “왜?”
   나는 조금 당황했다.
   “이제 다 먹기도 했고.”
   “그럼 더 시켜. 카드 줄게.”
   “그게 아니라, 들어가야지.”
   “더이상 올 사람도 없을 걸.”
   얼음이 녹아 연갈색이 된 커피를 천천히 젓는 형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장례식 진짜 피곤하지 않냐.”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돌아가신 분한테 이런 말하기는 뭐하지만,”
   형은 여전히 웃음을 지우지 않았다.
   “나는 할아버지한테 딱히 좋은 기억이 없어서.”
   그렇게 말한 형은 투명한 컵을 입에 대고 기울이더니 얼음을 씹어 먹었다. 아작아작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손가락으로 빈 접시를 꾹꾹 눌렀다. 도넛에서 떨어진 하얀 아이싱 부스러기가 묻었다. 입에 넣자 단맛이 났다. 침이 묻은 손가락을 냅킨에 문지르다가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갔다.
   “할아버지는 아침에 사과를 드셨어.”

    내가 그날의 이야기를 마치자 형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랬던가, 나는 기억이 없네.”
   그 사이 얼음을 다 먹은 형이 신용카드를 나에게 건네주었다.
   “기름 넣고 있을 테니까 적당히 사와.”
   계산대로 다가가자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던 아르바이트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오리지널 도넛 한 박스를 주문했다. 도넛 한 박스는 열두 개인데 여섯 개씩 두 박스로 나뉘어 계산대 뒤쪽에 쌓여 있었다. 아르바이트생은 느릿느릿 두 박스를 집어 비닐봉투에 담았다. 저렇게 다 만들어진 걸 줄 거면 핫 나우라고 왜 써놓은 거지. 속으로 투덜거리며 카드를 건넸다. 그 순간 진열장 한쪽에 세워진 배너가 눈에 들어왔다. 배너 가운데에는 빨갛게 반짝이는 사과가 그려져 있었다. 배너 속 사과 그림 아래쪽으로는 도넛들이 몇 개 놓였는데, 네모지게 자른 사과 조각들이 듬뿍 올라가서 탐스러워 보였다. 나는 배너를 가리키며 애플도넛도 한 박스 달라고 했다. 아르바이트생은 말없이 도넛 박스를 두 개 더 담았다. 도넛 네 박스는 제법 묵직했다.
   신용카드와 도넛 영수증을 건네주자 형은 영수증을 구겨서 주유소 쓰레기통에 넣었다. 사거리로 돌아가서 병원 방향으로 틀 때까지는 금방이었다. 하지만 거기서부터는 온통 정체였다. 형이 설명해준, 드라이빙 퍼포먼스의 우월함은 느낄 수가 없었다. 재개발로 혼잡한 좁은 길 너머로 병원이 보였다. 나는 아쉽게 안전벨트를 풀고 헐렁한 재킷을 다시 입었다. 조용한 차 안에 형의 목소리가 울렸다.
   “나는 할아버지하고 하이파이브를 해봤어.”
   형은 전방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말을 이었다.
   “내가 대학에 붙어서, 엄마가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모시고 제주도에 가려고 했지.”
   처음 듣는 얘기였다.
   “하지만 안 갔어.”
   형은 핸들을 쓰다듬었다.
   “엄마 말에 따르면 할아버지가 비행기를 타고 싶지 않다고 하셨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그해 여름에 북해도를 가셨어.”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이려고 했다.
   “이혼한 딸과 어딜 가는 게 남들 눈에 부끄러웠던 거지.”
   설마 그랬을까.
   “뭐,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형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제주도를 못 가서 엄마는 섭섭했단 말이야. 그래서 제주도 대신이라면 좀 그렇지만 밥을 먹었거든.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나 이렇게 넷이서만. 축하한다, 공부 열심히 해라, 그런 얘기를 하면서 식사를 하고.”
   드디어 차는 병원 정문으로 진입했다. 형은 장례식장 방향으로 핸들을 돌렸다.
   “밥을 다 먹고 나와서 잘 가시라고 인사를 했어. 그런데 할아버지가 한쪽 손을 딱 드는 거야. 그래서 나도 얼떨결에 손을 들었는데, 할아버지가 점점 가까이 다가와서……”
   장례식장 입구에 멈추었다.
   “우리는 그만 하이파이브를 해버렸지.”
   달칵, 잠금이 해제되었다. 나는 네 개의 도넛 박스가 든 봉투를 고쳐 쥐었다. 형이 웃음기 없는 얼굴로 두어 번 손을 흔들었다. 가볍게 바닥으로 뛰어내린 뒤, 차문의 모서리를 잡고서 안쪽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어땠어?”
   “뭐가.”
   “그때 느낌말이야, 어땠냐고.”
   형은 멍하게 뺨을 문질렀다.
   “글쎄, 보통이었어.”
   나는 마지막으로 만져보았던 할아버지의 차가운 손을 떠올렸다.
   “구체적으로 좀 말해봐, 따뜻했다거나 까칠했다거나 그런 거 있잖아.”
   하마터면 야, 하고 다그칠 뻔했다. 형은 천천히 말했다.
   “생각보다, 손에 힘이 있었어.”
   힘있게 하이파이브를 하는 할아버지. 그 손바닥은 내가 기억하는 차갑고 딱딱한 것과는 다를 것이다.
   “그러니까 여자하고 일본으로 온천을 가지, 그 나이에.”
   형이 중얼거렸다. 그 순간 뒤에서 경적이 울렸다.

    도넛은 분향소 안쪽의 창고 비슷한 방에서 먹기로 했다. 엄마는 식당에 과일도 있고 떡도 있는데 뭐 하러 도넛을 사왔냐며 짜증을 냈다. 숙모가 내 편을 들어주었다.
   “좋잖아요, 나중에 추억도 되고.”
   모두가 한 개씩 도넛을 먹자 여섯 개짜리 한 박스가 금방 비었다. 나는 두 번째 박스를 열었다. 아참, 하고 엄마가 말을 꺼냈다.
   “이따가 할머니 잠깐 오실 거야. 그때 할아버지가 아침에 사과 드셨는지 물어봐라.”
   “할머니가 오세요?”
   “당연히 와야지, 남편 장례식이잖아.”
   나는 아빠를 바라보았다. 아빠는 무심한 표정으로 커피를 홀짝이고 있었다. 엄마가 두 개째의 도넛을 집어 들었다. 한 번씩 베어 물 때마다 부드럽고 폭신한 도넛은 소리 없이 엄마의 입속으로 사라졌다. 입가에 하얗게 아이싱 부스러기가 묻어났고 그때마다 엄마는 혀를 내밀어 핥았다. 한 입, 두 입, 세 입, 네 입. 네 번 만에 도넛 하나가 없어졌다. 엄마는 입술을 티슈로 문질러 닦았다. 나는 내내 시선을 떼지 않았다. 엄마는 도넛을 저렇게 먹는구나.
   “형님, 정말 잘 드시네요.”
   “남으면 버리니까. 무슨 도넛을 이렇게 많이 사왔어? 그것도 다 똑같은 걸.”
   “두 가지거든요.”
   “뭘, 전부 한 종류더구만.”
   나는 잠자코 네 개의 도넛 박스를 하나하나 열었다. 이미 먹어치운 두 박스 바닥에는 아이싱 부스러기만 흩어진 채였다. 아직 손대지 않은 두 박스에는 오리지널 도넛이 여섯 개씩 들어 있었다. 사과는 한 조각도 없었다.

    네 개의 빈 도넛 박스들을 봉투에 담고 일어났다. 문득 할아버지의 사진에 눈길이 갔다. 잘 빗어 넘긴 머리카락, 넓지도 좁지도 않은 이마, 짙은 눈썹, 잔주름 사이로 부드럽게 휘어진 눈꼬리와 끝이 올라간 입매를 보며 생각했다. 나는 할아버지의 이런 표정을 본 적이 없었다고. 할아버지는 누구를 생각하고 있었을까.
   “왜 멍하니 있어, 빨리 가.”
   “할아버지는 이렇게 생기셨구나 싶어서.”
   “이렇게 안 생겼지.”
   엄마가 피식 웃었다.
   “칠순 때 찍은 사진이야. 너 태어나기도 전인데.”
   잘 봐라, 얼마나 젊니. 삼촌이 웃었다. 아빠가 진지하게 말했다. 이게 칠순이야? 나는 우리 결혼한 다음에 찍은 사진인 줄 알았어. 숙모도 거들었다. 저도요, 아버님 처음 뵈었을 때 이 모습이었는데. 삼촌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닌데, 아닐걸. 사촌이 끼어들었다. 사진 뒷면을 보면 날짜가 있을 거예요. 엄마가 손을 저었다. 아이고, 됐다.

    쓰레기장은 지하 주차장 안쪽 끝에 있었다. 종이컵 따위로 꽉 찬 쓰레기함 위에 조심스레 도넛 박스를 얹고 꾹 눌렀다. 왜 이렇게 쓰레기가 많을까. 장례식은 원래 이런 걸까. 어쩌면 오늘이 일요일이라서인지도 모른다. 오늘은 수거를 안 했겠지. 일요일은 쉬는 날이니까. 어느새 끈적이는 손가락을 바지에 문질렀다. 할아버지와 사촌은 정말로 운동을 했을까, 형은 진짜로 하이파이브를 했을까, 그때 할아버지 손에는 얼마나 힘이 있었을까, 할아버지는 아침에 사과를 먹었을까.
   나는 지하 주차장과 지상을 연결하는 통로로 들어섰다. 이따가 할머니가 오시면, 형한테 영수증을 재발급 받아보라고 하면, 아까의 아르바이트생이 아직 가게에 있다면, 그러면 진짜가 되는 걸까. 처음으로 궁금해졌다. 할아버지는 왜 사과를 먹었을까. 그와 동시에 깨달았다. 궁금해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지하 주차장 통로 끝으로 보이는 밤하늘을 향해 중얼거렸다. 그러네, 이제는 물어볼 수가 없네.
   아까 형이 내려주었던 장례식장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내일은 월요일이고 나는 이곳에 오지 않을 것이다. 평소처럼 학원에 가서 공부를 하고 시험을 준비해야지. 어쩌면 내일 아침에는 사과를 먹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은 일요일이기에, 나는 지금 찾아온 손님처럼 장례식장의 문을 열었다. 가족들은 지금도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고 있겠지. 아무도 모르는 할아버지에 대해 서로가 서로에게 들려주고 있을 것이다. 돌아가면 나도 같이 이야기를 해야지. 그건 울지 않으면서 작별할 수 있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그래, 우리는 밤에 도넛을 먹었고 할아버지는 아침에 사과를 드셨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내년이면 백 살이 된다.




박성진
학교를 오래 다니며 미술과 국어와 서사창작을 배웠다. 현재는 장소성이 분명한 일상적인 작업을 이미지와 말과 이야기를 활용하여 예술 혹은 예술교육의 형태로 실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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