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독



    오독(誤讀)은 잘못 읽거나 틀리게 읽는 것을 뜻한다.1) ‘단어 더미 탐미’는 텍스트를 지우고, 자르고, 붙이고, 페이지를 접고, 이미지를 끼워넣어 줄거리와 상관없이 나만의 방식대로 책을 오독하여 읽는다.


   샛별의 오독 : 편지





   한 권의 책은 어디선가 누군가가 보낸 편지다. 1992년 영국에서부터 시작된 행운의 편지거나 수백 년 동안 바다를 유영하던 물병 편지일 수도 있다. 그래서 책을 읽다가 바다표범의 목소리로 엉엉 울거나, 읽던 책을 잠깐 가슴 위에 얹고 눈을 감은 적이 있다.
   나도 누군가에게 편지를 썼다. 눅눅한 나의 심장과 유치한 노래 가사를 편지에 담아 보냈다. 내가 보낸 편지들은 철 지난 유행가처럼 잊혔지만 여전히 나는 사랑이 시시한 적이 없다.
   아직 읽지 않은 책들을 머리맡에 쌓아두는 습관이 있다. 책 표지만 봐도 마음이 넉넉하고 애틋해진다. 어떤 편지는 한 사람의 일생 동안 도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은영의 오독 : 마음의 마음



   점점 어두워지면 현실이 아닌 다른 곳, 내 안으로 깊숙이 빠져 들어가게 된다.
   그럴 땐 마음 한구석에 까맣고 큰 구멍이 생기는 느낌이다.
   한 해의 끝과 시작 사이에 있는 요즘은 생각이 더 많아져
   그 구멍은 점점 커진다.



   너무 자주 나의 외로움을 드러내는 걸까.
   이루지 못한 것과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불평들이 늘어가고,
   남과 비교하며 쏟아내는 삐뚤어진 생각들이 쌓여간다.
   가끔은 마음에 들지 않은 나를 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감추고 싶은 마음과 지우고 싶은 생각, 사소한 슬픔.
   모두 내 마음속에 있는 마음들.
   내 마음도 마음을 돌볼 시간이 필요하다.


   휘리의 오독 : 새벽 화원







   오래된 아파트에 산다. 그만큼 나의 도시생활도 오래되었다.
   우리 아파트 단지는 최근에 지어진 건물과 달리 1층 발코니 유리문이 가려지지 않는다. 1층 주민들은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유리문을 꼭꼭 가려놓았다. 그런데 그 빈틈없이 가려진 유리문들 사이, 대강 스쳐보아도 마루까지 훤히 보이는 집이 있다. 새벽에 불이 켜져 이른 저녁 시간에 불이 꺼지는 집. 아마도 노인의 집.

   조경수 화단은 식물들이 계절에 맞게 활동한다. 진홍색 장미, 해바라기같이 화려한 식물부터 시작해 이름 모를 소담한 꽃들이 가득한 화단. 엄격한 규율이 있는 아파트는 공동 소유의 화단을 개인이 가꾸는 걸 제한하지만, 너무 오래되어 서로의 생활이 익숙해진 아파트에서만 허락되는 공간일 터였다. 노인은 그곳에서 천천히 그리고 분주하게 움직인다. 꽃가위로 무언가를 싹둑 잘라내고, 분갈이하고, 때맞춰 꽃에 물을 준다. 나무의 줄기를 다듬는 노인의 손끝이 어찌나 바쁜지 길을 지나다 화단을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하지만 뒷모습만 보고도 의기양양한 표정을 어쩐지 난 알 것 같다.

   초여름의 이른 새벽에 외출하던 날. 새벽 5시 정도였을까. 잠이 없는 노인은 화단에 앉아 꽃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스팔트에 부딪히는 나의 발소리만 터덕터덕 울려퍼지던 새벽. 화단에 간이의자를 놓고 앉아 꽃이 잠든 모습을 바라보던 노인을 생각한다. 그 가득찬 눈빛을 기억한다.

   한 사람이 가꾸는 공동 화단.
   너무 작아서 아무도 욕심내지 않는 화단.
   노인이 마음을 둔 작은 새벽 화원은
   이미 모두의 마음에 담겨 있다.




1) 표준국어대사전
단어 더미 탐미
은영. 일러스트레이터. 마음에 깊이 남아 잊혀지지 않는 것을 담아 기록하고 그립니다.
샛별. 그림책 작가. 건강히 오랜 호흡으로 그림책을 만들고 싶습니다.
휘리. 일러스트레이터. 살아 있는 것의 에너지를 표현하는 데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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