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러앉아 함께 부르는 노래    {그림책=선물} 마무리하던 날


   {그림책=선물}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는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그림책으로 마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보내주신 사연을 어떤 분들과 함께 읽을지 고민하고, 선물할 그림책을 고르고, 우리의 마음을 담아 편지를 쓰고, 실물 그림책을 함께 보내는 과정은 제가 예상한 것보다 시간과 공력이 드는 일이었지만, 다행히 선물을 받은 분들의 반응 또한 제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진솔하고 따뜻했습니다. 덕분에 저는 선물을 받는 사람만이 행복한 것이 아니라, 정성껏 준비한 선물이 상대방에게 잘 가닿는 순간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8개월 남짓 진행한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면서 그동안 함께 해주신 분들과 둘러앉아 그림책을 읽으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일명 ‘우리 만나요’ 파티를 제안했고 모 일 모 처에 둘러앉았습니다.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은 그림책을 하나씩 안고서 말이지요.



그림책을 들고 만나는 자리지만 즐거운 파티에 달콤하고 맛난 것들이 빠질 수 없지요. 직접 만든 케이크와 알록달록 먹거리를 챙겨와 주셨어요. 예상치 못한 또하나의 ‘선물’이었습니다.


   아쉽게도 파티에 참석하지 못한 분들은 그림책으로 ‘대리 출석’을 해주셨습니다. 5화 사연자 바다님은 1화 사연자인 레오님에게 『프레드릭』(레오 리오니 지음, 최순희 옮김, 시공주니어, 2013)을 추천해주셨어요. “남들 눈에는 일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도, 게을러 보일 수도, 뭔가 이상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프레드릭이 정말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몰라서 일 거다.”라며 “레오님도 프레드릭처럼 자신만의 햇살을 모으고 색깔을 찾아가고 있는 것 같다.”라고 말씀해주셨어요. 『프레드릭』은 자리를 함께한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유명한 작품이지만 오랜만에 꺼내 읽으니 새롭게 다가온다며 입을 모았습니다.

『프레드릭』의 한 장면. 내용을 아는 그림책이라도 다른 사람이 소리 내어 읽어주는 것을 듣다보면 새로운 장면을 발견하거나 이전과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4화 사연을 함께 고민해주신 그림책 작가 김지연 선생님은 여러 겹으로 포장한 ‘블라인드 북’을 선물해주셨어요. 덕분에 무슨 책일지 상상하며 포장을 벗기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이 책은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는 가끔 엉뚱한 이야기를 하십니다』(마리 부샨 글, 시몽 크루 그림, 함정임 옮김, 문학동네어린이, 2004)였습니다. 속을 알 수 없는 블라인드 북처럼, 사람들 속에도 각각의 내밀한 이야기가 있음을 알려주는 작품이지요.

제목부터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는 가끔 엉뚱한 이야기를 하십니다』는 아쉽게도 절판되었다고 하네요.

   그림책 작가 은미님이 가져온 『브루노를 위한 책』(니콜라우스 하이델바흐 지음, 김경연 옮김, 풀빛, 2003)은 단순하고 선명한 이야기 구조를 가진 작품인데, 누군가 읽어주는 걸 들으면 감동과 재미가 배가되는 책이었습니다. ‘가름끈’의 활용법에 감탄하기도 하고, 꼭 이 제목이어야 했을까 아쉬워하기도 하며 함께 읽었지요.


책 내용을 다 알고 있지만 브루노를 위해 기꺼이 책을 펼쳐 보이는 올라처럼, 이 책을 가져온 은미 작가님도 이 책을 처음 보는 사람들을 위해 그림책을 읽어주었어요.

   그림책 서점 노란우산 최재경 점장님이 챙겨온 『안녕, 울적아』(안나 워커 지음, 신수진 옮김, 키다리, 2016)는 우울한 마음을 무조건 몰아내려고 애쓰기보다는 우울함이 거기 있음을 알아봐주자는 그림책입니다. {그림책=선물} 프로젝트에 사연을 보내주신 분들만이 아니라 어느 누구라도, 발목을 접질리거나 감기에 걸리는 것처럼 마음이 우울해질 수 있지요. 그럴 때는 빨리 그 상태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조바심이나, 영원히 그 상태에 머무를 것 같은 절망감에 빠지는 대신, 있는 그대로의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지요.

아이부터 어른까지, 마음의 우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책입니다.

   {그림책=선물}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꼼꼼하고 살뜰하게 원고를 편집해준 남지은 선생님도 파티에 와주셨어요. 선생님이 챙겨온 『아모스 할아버지가 아픈 날』(필립 C. 스테드 글, 에린 E. 스테드 그림, 유병수 옮김, 열린책들, 2011) 역시 널리 알려진 작품이었지만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들여다보며 함께 읽으니 혼자 볼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더라고요. ‘이 책에 등장하는 동물들이 모두 늙었다’는 발견과 이들이 무엇을 은유하는지에 대한 저마다의 해석까지, 책을 읽은 후 나눈 이야기가 인상 깊었습니다.

익숙한 이야기 구조를 가진 그림책일수록 빨리 넘기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숨겨진 디테일들을 발견하는 기분으로 천천히 읽으면 좋아요.

   문주선 이마주 편집장님은 최근 인상적으로 본 그림책 『초원』(우미정 지음, 책고래, 2018)을 가져와주셨어요. 파티에 온 사람들이 모두 그림책 애독자이자 관련된 일을 하고 있어서, 국내 창작그림책에서 보기 드문 대담한 그림체와 이야기 구성이라 외서처럼 보이기도 한다는 의견, 출산 장면을 넣는 것에 대해 고민이 있었을 것 같다는 추측, 만약 나라면 이런 책을 작업하거나 만들 수 있을 것인지, 각자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지요.

이날 함께 읽은 그림책 중 가장 신간이라 그런지 다양한 의견들이 주고받은 작품입니다. 저마다 취향과 입장이 다를 수는 있지만 다양한 시도들이 많아져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습니다.

   책방 사춘기 유지현 대표님이 챙겨온 그림책 『빗방울이 후두둑』(전미화 지음, 사계절, 2016)은 어떤 마음 상태에서 보느냐에 따라 저마다 다르게 감정이입이 되는 작품입니다. 한창 시련을 겪고 있는 상태에서 보면 ‘왜 나한테 이런 일이 벌어지지?’ 하고 속상하고 억울한 마음이 클 수 있는데 “에라 모르겠다! 천천히 걸어가자.”라는 대목에서는 졸아들던 마음이 탁 풀리는 느낌을 받을 수 있지요.

간결하고 힘있는 그림체가 무심하게 툭툭 던지는 위로처럼 다가옵니다.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며 제가 고른 그림책은 『발자국개』(임정자 글, 한병호 그림, 문학동네, 2017)입니다. 필요한 순간에 힘이 되어주는 존재가 곁에 있으면 좋겠으나, 반드시 눈에 보이는 존재만이 우리를 위로하는 것은 아니지요. 우리가 함께 나눈 순간들이 내 속 어딘가에 스미었다가, 꼭 필요한 순간에 슬그머니 힘이 되어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이 책이 제가 이 프로젝트에서 마지막으로 소개하는 그림책이네요.

   이날 함께 읽은 그림책들은 그 자리에 모인 우리의 마음을 닮았습니다. 그림책을 함께 읽다보면 혼자 볼 때와는 전혀 다른 감흥을 받게 될 때가 많습니다. {그림책=선물} 프로젝트가 끝이 나더라도, 함께 그림책을 보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가 있었으면 좋겠다, 바라게 되었네요.

각자 가져온 그림책을 쭉 늘어놓고 마음에 드는 책을 ‘평화롭게’ 나눠 가졌습니다. 그 그림책들은 이 자리를 기억하는 좌표점이자, 또다른 이야기의 시작점이 되겠지요.

    이 프로젝트를 통해 누군가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던 제 마음은 처음과 많이 달라졌습니다. 진정한 위로는 그것이 필요한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주고받는 것임을 깨달았으니까요. 창작자의 의도대로 굴러가는 이야기보다, 그 틀을 벗어난 이야기가 좋은 이야기라고 믿기에, 참으로 다행한 일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림책은 처음 볼 때보다 다시 꺼내볼 때, 혼자 읽는 것보다 함께 읽을 때 예상치 못한 것들을 발견하게 합니다. 둘러앉아 함께 읽는 그림책은 한 편의 시처럼, 노래처럼, 그 순간을 깊이 기억하게 합니다. 살면서 그런 발견의 순간들을 만나시길, 살다보면 우리가 또 만날 수 있길 기대합니다.




위모씨
그림책을 좋아하고 그림책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공유하고 싶어 안달하는 경향이 있어 좋아하는 그림책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https://www.facebook.com/we.are.all.child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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